[include(틀:일본의 연호)] ||<tablealign=right><tablebordercolor=#D60033><tablebgcolor=#FFF,#000> [[일본어]] ||[ruby(白, ruby=はく)] [ruby(雉, ruby=ち)] || || [[그레고리력]] ||[[650년]] [[3월 22일]] ~ [[654년]] [[11월 24일]] || || 이전 ||[[다이카]] || || 다음 ||(없음) || || 그다음 ||[[슈초]] || [목차] [clearfix] == 개요 == '''[[일본]]의 두 번째 [[연호]](元号).''' 시기는 [[율리우스력]] 기준 650년~654년. 하쿠치는 흰(白) [[꿩]](雉)이라는 뜻으로, 아나토노쿠니(穴門国)[* 후일의 [[나가토]]노쿠니(長門国). 현재의 [[야마구치현]] 서부.]의 고쿠시(国司)[* [[쿠니]]의 행정관으로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 구사카베노 시코부(草壁醜経)가 천황에게 흰 [[꿩]]을 헌상한 것을 기념하여 개원하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흰 꿩은 길조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654년 11월에 제36대 [[코토쿠 덴노]]가 승하하여 사용이 종료되었으며, 그 후로는 연호를 쓰지 않고 종전처럼 [[육십갑자]] 기년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 제40대 [[덴무 덴노]] 즉위 14년 뒤, 연호 사용 중단 32년 만인 [[686년]]에 [[슈초]](朱鳥) 연호가 개원했다. --그나마도 2달짜리 연호였다-- == 특징 == [[아스카 시대]] 중기로, 제36대 [[천황]]이였던 [[코토쿠 덴노]]가 다스린 시기. [[다이카 개신]] 이후 행정 정비와 [[견당사]] 파견 등이 일어났다. == 주요 사건 == 이하는 전부 [[율리우스력]]을 사용한다. * 원년 (650) * (개원 전): 3월 16일에 아나토노쿠니(穴門国)의 고쿠시(国司) 구사카베노 시코부(草壁醜経)가 흰 [[꿩]]을 헌상했다. * 3월 22일: '''하쿠치(白雉) 연호 개원.''' 아나토노쿠니의 조역(調役; 공물 헌상)이 3년간 면제되었다. * 3년 (652) * 2월 14일: 새로운 황궁인 [[나니와]]노나가라노토요사키노미야(難波長柄豊碕宮)[* 통칭 '전기 나니와 궁(前期難波宮)'. 지금의 [[오사카시]] [[주오구(오사카)|주오구]]에 위치했다. 터 일부는 나니와노미야 사적공원(難波宮史跡公園)이 되어 있다.]가 완성되었다. * 4월: 반전수취(班田収授)가 완료되고 [[호적]](戸籍)이 작성되었다. * 6월 2일: 큰 수해가 발생하여 많은 인명이 희생되고 경작지도 크게 피해를 입었다. * 4년 (653) * 6월 12일: 기시노 나가니(吉士長丹), 다카타노 네마로(高田根麻呂), 도쇼(道昭), 조에(定恵) 등이 제2차 [[견당사]](遣唐使)로 파견되었다. 당의 [[한반도]] 침략에 관한 정세에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 [[덴지 덴노|나카노오에 황자(中大兄皇子)]]가 [[코토쿠 덴노]]의 뜻에 반하여 군신을 이끌고 아스카(飛鳥) 이타부키노미야(板蓋宮)[* 전 수도]로 되돌아갔다. * 5년 (654) * 2월: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가 제3차 [[견당사]](遣唐使)로 파견되었다. 2차 때와 마찬가지로 당의 한반도 침략에 관한 정세에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었다는 설이 있다. * 3월 or 4월: 견당사로 파견된 다카무코노 구로마로(高向玄理)가 [[고종(당)|당 고종]]을 알현한 뒤, 병으로 인해 [[시안시|장안]]에서 급사했다. * 11월 24일: 코토쿠 덴노가 승하함에 따라 '''하쿠치(白雉) 연호 사용 종료.''' 뒤를 이어 645년에 [[을사의 변]]으로 퇴위했던 [[고교쿠 덴노]][* 퇴위 이후 스메미오야노미코토(皇祖母尊) 상황으로 불렸다.]가 [[사이메이 덴노]](斉明天皇)로 다시 즉위했다. [[분류:일본의 연호]][[분류:아스카 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