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랜드
Paul Rand | ||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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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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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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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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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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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부모
| 이작 예후다 로젠바움, 레아 로젠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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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앤 빙클리 (1949~1960)
마리온 스와니 랜드 (1975~1996) | |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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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상세
3. 생애
학교에서 작업하고 있는 폴 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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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나 프랫과 파슨스 디자인 스쿨에서 공부했다. 여기서 그의 경력을 4번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1935년, 23세 나이에 에스콰이어의 아트디렉터로 일하면서 첫 번째 경력이 시작되었다. 이때 폴 랜드는 특유의 독특한 스타일과 타이포그래피를 19세기 문자에 결합한 디자인을 선보였는데 이는 여러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모더니즘, 기발함과 단순함에 열중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1944년, Jacqueline Cochran의 잡지 광고
| 1945년, 와인회사의 광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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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1941년 에스콰이어 아트디렉터를 내려놓고 광고 디자이너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소비자가 그들의 지식을 활용해서 광고 메시지를 해독하고 이해한다'는 소위 New Advertising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창출하기도 했다.
미국의 컴퓨터 회사 IBM
| 스티브 잡스가 세운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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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방송국 ABC
| 미국의 물류회사 U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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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는 현재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세기의 유명 로고를 제작하는데 바로 IBM, ABC 방송국, CBS 방송국, UPS 등의 로고 디자인이다. 이 로고는 디자인 역사상 큰 획을 그은 로고로 단순함이라는 기초에 충실하고 눈에 잘 띄며 각 기업의 컨셉에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로고의 상당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이 사용되고 있다.
1993년, '디자인, 형태 그리고 혼돈'
| 1996년, '라스코에서 브루클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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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가
폴 랜드를 천재라고 평가했던 뉴바우하우스의 라즐로 모호이너지(Laszlo Moholy-Nagy)는 폴 랜드에 대해 "시적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이자, 사업가인 이상주의자인 동시에 현실주의자이다. 폴 랜드는 필요(need)와 기능적(function)인 견지에서 생각한다. 그는 그의 문제를 분석할 수 있지만 그의 환상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물론 안 좋은 평도 있다. '극단적인 모더니스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주의자'. 심지어 그의 애제자였던 제시카 헬펀드는 그를 '성급하고 용서없고 견디기 힘든 사람'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오만함, 완고함, 타협할 줄 모름, 가차없음 같은 말도 그를 묘사하는 많은 표현 중 하나이다. 여기에 그의 마지막 저서 <폴 랜드, 미학적 경험(라스코에서 브루클린까지)>에 적힌 헌사가 '나의 모든 친구들과 적들에게'라는 걸 생각하면 그가 참 많은 적을 두고 살았던 듯 하다. 그러나 그에 대해 저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조차 나중에 가서는 그의 통찰력, 독창성, 혹은 현대 그래픽 디자인계에 끼친 영향 등을 언급한다.
물론 안 좋은 평도 있다. '극단적인 모더니스트',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수주의자'. 심지어 그의 애제자였던 제시카 헬펀드는 그를 '성급하고 용서없고 견디기 힘든 사람'이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오만함, 완고함, 타협할 줄 모름, 가차없음 같은 말도 그를 묘사하는 많은 표현 중 하나이다. 여기에 그의 마지막 저서 <폴 랜드, 미학적 경험(라스코에서 브루클린까지)>에 적힌 헌사가 '나의 모든 친구들과 적들에게'라는 걸 생각하면 그가 참 많은 적을 두고 살았던 듯 하다. 그러나 그에 대해 저런 말을 내뱉는 사람들조차 나중에 가서는 그의 통찰력, 독창성, 혹은 현대 그래픽 디자인계에 끼친 영향 등을 언급한다.
5. 기타
- 한 가지 일화가 있는데 폴 랜드는 디자인 미팅 당시 홍보 담당자가 아닌 해당 기업의 CEO만 상대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CEO가 자기 기업의 아이덴티티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작업을 진행하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