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4년(세종 16년)에 평원대군으로 봉해졌다.
# 1437년(세종 19년)에 종학에 입학하였고 이듬해에 호군 홍이용의 딸과 혼인하였다.
#평소에 경서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
시전》과 《
예기》, 《대학연의》를 숙달했다고 한다.
무예 연마에도 힘써서
활쏘기와
승마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성품 또한 겸손하고 조용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냈다고 한다.
1445년(세종 27년) 2월 22일에
[6] 천연두로 17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7] 다섯째 형
광평대군이 죽은 지 한 달밖에 안 된 때였다.
세종과
소헌왕후는 잇따른 아들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았으며 이는 세종이 말년에
불교에 심취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묘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이곡리에 있다.
부인인 강녕군부인
남양 홍씨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예종의 아들이자 평원대군에게는 조카손자인
제안대군이 그의 봉사손으로 입적했다.
양자로 들어갔다는 말도 있지만,
항렬 상 맞기 않기 때문에
[8] 봉사손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제안대군도 후사가 없었고, 이후
정종의 12남 도평군의 현손 이파(李葩)가 제안대군의 양자로 입적된다. 다만, 제안대군과 이파가 죽은 지 한참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