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대군]][[분류:1427년 출생]][[분류:1445년 사망]] [include(틀:조선의 왕자/목조 ~ 연산군)] ||<-3><tablealign=right><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94153E><#94153E> {{{#gold '''조선 세종의 왕자'''[br]{{{+1 '''평원대군[br] 平原大君'''}}}}}} || ||<-2><width=30%><#94153E> '''[[군호|{{{#gold 군호}}}]]''' ||<(> 평원대군(平原大君)[* 군호는 [[강원도]] [[원주시|원주]]의 별칭인 '평원(平原)'에서 유래했다.] || ||||<:><#94153E> '''[[시호|{{{#gold 시호}}}]]''' ||<(> 정덕(靖德) → 정헌(定憲) || ||||<:><#94153E> '''[[본관|{{{#gold 본관}}}]]''' ||<(> [[전주 이씨|전주]](全州) || ||||<:><#94153E> '''[[이름|{{{#gold 이름}}}]]''' ||<(> 림(琳)[* [[야고코로 에이린]]의 '''린'''을 이렇게 쓴다.] || ||||<:><#94153E> '''[[자(이름)|{{{#gold 자}}}]]''' ||<(> 진지(珍之) || ||||<:><#94153E> '''[[아호|{{{#gold 호}}}]]''' ||<(> 근행당(謹行堂) || ||||<:><#94153E> '''{{{#gold 부왕}}}''' ||<(> [[세종(조선)|조선 세종]] || ||||<:><#94153E> '''{{{#gold 모후}}}''' ||<(> [[소헌왕후|소헌왕후 심씨]](昭憲王后 沈氏)|| ||||<:><#94153E> '''{{{#gold 부인}}}''' ||<(> 강녕부부인 [[남양 홍씨]](南陽 洪氏) || ||||<:><#94153E> '''{{{#gold 묘소}}}''' ||<(> 경기도 포천군 소흘읍 이곡리 || ||<|2><:><#94153E> '''{{{#gold 생몰[br]기간}}}''' ||<:><#94153E> '''[[음력|{{{#gold 음력}}}]]''' ||[[1427년]] [[11월 18일]] ~ [[1445년]] [[1월 16일]] || ||<:><#94153E> '''[[태양력|{{{#gold 양력}}}]]''' ||[[1427년]] [[12월 6일]] ~ [[1445년]] [[2월 22일]]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전기의 왕족. [[세종(조선)|세종]]과 [[소헌왕후|소헌왕후 심씨]]의 7남이다.[* [[문종(조선)|문종]], [[세조(조선)|세조]], [[안평대군]], [[임영대군]], [[광평대군]], [[금성대군]]의 친동생이자 [[영응대군]]의 친형이다.] == 생애 == 1434년(세종 16년)에 평원대군으로 봉해졌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1601021_004|#]] 1437년(세종 19년)에 종학에 입학하였고 이듬해에 호군 홍이용의 딸과 혼인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da_12004021_003|#]] 평소에 경서를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특히, 《[[시전]]》과 《[[예기]]》, 《대학연의》를 숙달했다고 한다. [[무예]] 연마에도 힘써서 [[국궁|활쏘기]]와 [[승마]]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성품 또한 겸손하고 조용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있게 지냈다고 한다. == 사망 == 1445년(세종 27년) 2월 22일에[* 음력 1월 16일.] [[천연두]]로 17세의 나이에 [[요절]]하였다.[* [[세는나이]] 19세.] 다섯째 형 [[광평대군]]이 죽은 지 한 달밖에 안 된 때였다. [[세종(조선)|세종]]과 [[소헌왕후]]는 잇따른 아들들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충격을 받았으며 이는 세종이 말년에 [[불교]]에 심취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묘]]는 [[경기도]] [[포천군]] 소흘면 이곡리에 있다. == 여담 == * 평원대군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해 묘소 근처에 별궁으로 세운 것이 [[수진궁]]이다. 이 수진궁은 나중에 평원대군의 봉사손이 되는 [[제안대군]]의 집으로 옮겨져 봉작을 받기 전에 사망한 왕자녀 및 혼인 전에 사망한 12세 이하의 어린 [[공주]]와 [[옹주]]들의 [[제사]]를 같이 모시는 곳이 되었다. == 가족과 후손 == 부인인 강녕군부인 [[남양 홍씨]]와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예종(조선)|예종]]의 아들이자 평원대군에게는 조카손자인 [[제안대군]]이 그의 봉사손으로 입적했다. [[양자(가족)|양자]]로 들어갔다는 말도 있지만, [[항렬]] 상 맞기 않기 때문에[* 평원대군은 제안대군의 작은할아버지이다.] 봉사손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그러나 [[제안대군]]도 후사가 없었고, 이후 [[정종(조선)|정종]]의 12남 도평군의 현손 이파(李葩)가 제안대군의 양자로 입적된다. 다만, 제안대군과 이파가 죽은 지 한참 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