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테오도어 프란츠 에두아르트 칼루차(Theodor Franz Eduard Kaluza,1885년 11월 9일 - 1954년 1월 19일)
독일 제국 오펠른(2차대전 이후 폴란드 오폴레) 출생이며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다.그래서 독일의 물리학자로 기록된다.
그는 어느 날 먼 훗날 과학사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킬 획기적인 발상을 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5차원이며 이 5차원 공간의 측지선을 따라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며 그는 5차원 공간에서는 물체가 중력과 전자기력을 받아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은 시간속에 살고 있으므로 남은 한 차원은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차원일 수밖에 없다. 칼루자는 이 미지의 차원을 찾아 나섰다. 그는 남은 한 차원은 원처럼 휘어졌는데 그 원이 너무 작기 때문에[1] 우리가 느낄 수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일 제국 오펠른(2차대전 이후 폴란드 오폴레) 출생이며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는 어느 날 먼 훗날 과학사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킬 획기적인 발상을 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5차원이며 이 5차원 공간의 측지선을 따라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며 그는 5차원 공간에서는 물체가 중력과 전자기력을 받아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은 시간속에 살고 있으므로 남은 한 차원은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차원일 수밖에 없다. 칼루자는 이 미지의 차원을 찾아 나섰다. 그는 남은 한 차원은 원처럼 휘어졌는데 그 원이 너무 작기 때문에[1] 우리가 느낄 수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2. 거장의 인정을 받다
칼루자가 자신의 이론을 거의 완성했던 1919년만 해도 새 이론을 발표하기가 매우 어려웠기[2]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논문을 아인슈타인에게 보내서 그 논문이 학술지에 실릴 수 있도록 추천해줄 것을 부탁했다.
논문을 받아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확장한 칼루자의 이론에 금세 매료됐지만 그 자리에서 추천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그로부터 2년 반 동안 계속된 편지 왕래를 통해 칼루자 논문의 일부 수정을 요구했다. 드디어 1921년 아인슈타인은 칼루자의 논문을 학계에 추천했다. 이로써 칼루자의 이론이 베를린아카데미학회지에 실리게 되었다.
이 이론은 그의 이론의 신봉자이자 그의 주장의 힘을 보탠 클라인 박사[3]의 이름을 함께 따서 칼루자-클라인 이론으로 불리게 된다.
논문을 받아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확장한 칼루자의 이론에 금세 매료됐지만 그 자리에서 추천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그로부터 2년 반 동안 계속된 편지 왕래를 통해 칼루자 논문의 일부 수정을 요구했다. 드디어 1921년 아인슈타인은 칼루자의 논문을 학계에 추천했다. 이로써 칼루자의 이론이 베를린아카데미학회지에 실리게 되었다.
이 이론은 그의 이론의 신봉자이자 그의 주장의 힘을 보탠 클라인 박사[3]의 이름을 함께 따서 칼루자-클라인 이론으로 불리게 된다.
3. 어이없이 사장(死藏)되다(...)
4. 늦게나마 재조명되다
[1] 10−33cm 정도라고 추정되고 있다.[2] 요즘 같으면 누구나 자기 논문을 전문학술지에 투고할 수 있다. 투고된 논문은 곧바로 학술지를 발행하는 학회의 편집위원에게 전달된다. 편집위원은 그 논문과 유사한 연구를 한 전문가에게 문의한 뒤 학술지에 게재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1919년 당시에는 저명한 물리학자의 추천이 없으면 학술지에 발표할 수조차 없었다.[3] 클라인의 병으로 유명한 펠릭스 클라인이 아니다!!!! 이분은 오스카 클라인이다.[4] 당시 물리학계의 주류는 양자역학이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도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양자역학 연구로 노벨상을 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