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external/astro.if.ufrgs.br/kaluza.jpg]] [목차] == 개요 == 테오도어 프란츠 에두아르트 칼루차(Theodor Franz Eduard Kaluza,1885년 11월 9일 - 1954년 1월 19일) [[독일 제국]] 오펠른(2차대전 이후 [[폴란드]] 오폴레) 출생이며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공부했다.~~그래서 독일의 물리학자로 기록된다.~~ 그는 어느 날 먼 훗날 과학사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킬 획기적인 발상을 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시공간]]이 5차원이며 이 5차원 공간의 측지선을 따라서 물체가 움직이는 것이며 그는 5차원 공간에서는 물체가 [[중력]]과 [[전자기력]]을 받아 움직이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3차원의 공간과 1차원은 시간속에 살고 있으므로 남은 한 차원은 우리가 전혀 느끼지 못하는 차원일 수밖에 없다. 칼루자는 이 미지의 차원을 찾아 나섰다. 그는 남은 한 차원은 원처럼 휘어졌는데 그 원이 너무 작기 때문에[* 10−33cm 정도라고 추정되고 있다.] 우리가 느낄 수도 없고 또한 볼 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 [[아인슈타인|거장]]의 인정을 받다 == 칼루자가 자신의 이론을 거의 완성했던 1919년만 해도 새 이론을 발표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요즘 같으면 누구나 자기 논문을 전문학술지에 투고할 수 있다. 투고된 논문은 곧바로 학술지를 발행하는 학회의 편집위원에게 전달된다. 편집위원은 그 논문과 유사한 연구를 한 전문가에게 문의한 뒤 학술지에 게재할 것인가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1919년 당시에는 저명한 물리학자의 추천이 없으면 학술지에 발표할 수조차 없었다.] 때문에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논문을 아인슈타인에게 보내서 그 논문이 학술지에 실릴 수 있도록 추천해줄 것을 부탁했다. 논문을 받아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이론을 확장한 칼루자의 이론에 금세 매료됐지만 그 자리에서 추천서를 작성하지는 않았다. 아인슈타인은 그로부터 2년 반 동안 계속된 편지 왕래를 통해 칼루자 논문의 일부 수정을 요구했다. 드디어 [[1921년]] 아인슈타인은 칼루자의 논문을 학계에 추천했다. 이로써 칼루자의 이론이 베를린아카데미학회지에 실리게 되었다. 이 이론은 그의 이론의 신봉자이자 그의 주장의 힘을 보탠 [[클라인]] 박사[* [[클라인의 병]]으로 유명한 펠릭스 클라인이 '''아니다!!!!''' 이분은 오스카 클라인이다.]의 이름을 함께 따서 칼루자-클라인 이론으로 불리게 된다. == 어이없이 [[사장#s-3|사장]](死藏)되다(...) == 그런데 생각이 시대를 너무 앞서갔고[* 당시 물리학계의 주류는 [[양자역학]]이었다. 실제로 아인슈타인도 [[상대성 이론]]이 아니라 양자역학 연구로 [[노벨상]]을 탄 것이다.], 자신의 이론 자체에도 결함이 있었는지라 말 그대로 씹혔다(...). [[안습]]. 하기야 [[양자역학]]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했던 시절이니.... 덧붙여서 결함은 전자의 전하량에서 발생했다. 상대성이론을 5차원 시공간으로 확장한 결과, 맥스웰의 전자기법칙이 자동으로 유도되었기 때문에 힘의 통합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좋았으나, 이 이론으로 계산시 전자의 전하량이 실제 측정값과 너무나도 동떨어진 값이 나왔기 때문에 사장되었다. == 늦게나마 재조명되다 == 그러나 이 이론의 안습한 신세는 세월이 지나며 역전되는데, 양자역학의 연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를 때쯤에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이 충돌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물리학계가 [[헬게이트]]가 열리며 새로운 이론의 필요성이 느껴지게 되었기 때문인데 이때 등장하게 된 것이 바로 '''[[초끈 이론]]'''이다. 항목을 보아도 알겠지만, 초끈 이론에서의 중요한 이론 중 하나인 '''''여분의 차원'''''이란 개념이 사장되었던 그의 이론에서 발굴되게 된 것이다. [[엘러건트 유니버스]]의 저자인 [[브라이언 그린]]은 그를 '''''시대를 앞서간 물리학자'''''라고 극찬하였다. [[분류:물리학자]][[분류:1885년 출생]][[분류:1954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