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실존 인물인가?
그런데, 이 인물은 오로지 강릉 최씨 문중의 기록에만 등장하는 인물로, 이이(李珥)가 1564년에 지은 최응현(崔應賢)의 비명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모순점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1.최승로는 고려 개국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고, 삼국 통일 당시엔 겨우 10세였는데, 그 증손이 고려의 개국공신이 될 수는 없다.
2.정승이라는 관직명이 처음 쓰인 것은 몽골 간섭기인 1308년이다.
3.신하를 군 또는 부원군에 봉하는 제도 역시 몽골 간섭기인 1298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시행된 것이다.
결국, 최필달은 후대에 창작된 가공의 인물로 보인다.
모순점을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다.
1.최승로는 고려 개국 당시엔 태어나지도 않았고, 삼국 통일 당시엔 겨우 10세였는데, 그 증손이 고려의 개국공신이 될 수는 없다.
2.정승이라는 관직명이 처음 쓰인 것은 몽골 간섭기인 1308년이다.
3.신하를 군 또는 부원군에 봉하는 제도 역시 몽골 간섭기인 1298년에 가서야 처음으로 시행된 것이다.
결국, 최필달은 후대에 창작된 가공의 인물로 보인다.
[1] 그를 시조로 하는 파 이외에도 계보가 연결되지 않는 파가 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