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장조의 왕녀 청연공주 | 淸衍公主 | ||
조선 사도세자의 딸 청연군주 | 淸衍郡主 | ||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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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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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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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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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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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2남 1녀
(장남) 김재창 (차남) 김재삼 (장녀) 딸 | |
1. 개요
2. 생애
2.1. 탄생
1754년(영조 30) 7월 14일, 당시 세자빈이었던 혜경궁 홍씨가 낳았다. 한중록에 따르면, 원래 출산 예정일은 6월이었으나 달을 넘기는 바람에 한산부부인 이씨[7]가 대궐에서 50여 일을 머물렀다고 한다.
그해 7월 14일에 내 청연을 낳으니, 영조께서 "백여 년 만에 군주(郡主)가 처음 나니 귀하다" 하시며 기뻐하시더라.[10]
《한중록》[11]
2.2. 혼인 생활
1765년(영조 41) 참의 김상익의 아들 김기성의 아들이 간택되어 같은 해 4월 11일에 혼인하였다. 그런데 정조가 남긴 존현각일기를 보면 김상익에 대해 좋은 평을 찾아볼 수 없다. 홍인한과 정후겸이 겨루는 형세를 관망하다가 권세를 독점할 생각을 한 사람으로 보고 있고, 왕세손으로 있을 때는 "소조(小朝)의 차대(次對)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았고"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14]
20세이던 1773년, 동생 청선공주, 궁녀였던 후궁 의빈 성씨와 소설 《곽장양문록》을 필사하였다. 어린 나이에 혜경궁 홍씨의 궁녀로 들어온 의빈 성씨와의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때는 청연이 이미 혼인하여 궁 밖에서 생활하던 때였는데, 독서와 필사가 당대 왕실 여성들의 취미 생활로 추측된다.[15]
20세이던 1773년, 동생 청선공주, 궁녀였던 후궁 의빈 성씨와 소설 《곽장양문록》을 필사하였다. 어린 나이에 혜경궁 홍씨의 궁녀로 들어온 의빈 성씨와의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때는 청연이 이미 혼인하여 궁 밖에서 생활하던 때였는데, 독서와 필사가 당대 왕실 여성들의 취미 생활로 추측된다.[15]
2.3. 죽음
3. 유물
- 《청연군주 노의》: 우리나라 복식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유물로, 1963년 경기도 광주에서 청연군주와 김기성의 합장묘를 이장하던 중 발굴한 200여점 중 하나다. 노의(露衣)는 왕세자빈, 왕세손빈, 내명부 여성과 대군의 정실인 부부인, 왕자의 정실인 군부인 등 정4품 이상의 정실부인이 착용하였다.
- 《청연군주 당의》: 18세기 궁중용 당의의 모양을 알 수 있으며, 금실을 넣어 짠 석류와 칠보, 겉저고리와 안저고리 2겹으로 한 벌을 이루는 당의다.
- 《청연군주 토황색 명주저고리》: 겹저고리 두 점이 끼워져 있는 4겹의 '두벌저고리' 형태다.
4. 청연 공주를 연기한 배우
[1] 승정원일기, 영조 30년 7월 14일. # [2] 승정원일기, 영조 30년 7월 14일. # [3] 본관은 광산, 초명은 두성(斗性), 자는 성여(成汝), 호는 이길헌(頤吉軒),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4] 원래 광은부위였으나 청연군주가 청연공주로 추증되면서, 광은부위도 광은위로 추증되었다. [5] 본관은 광산, 초명은 두성(斗性), 자는 성여(成汝), 호는 이길헌(頤吉軒),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6] 원래 광은부위였으나 청연군주가 청연공주로 추증되면서, 광은부위도 광은위로 추증되었다. [7] 혜경궁 홍씨의 어머니이자 홍봉한의 아내. [8] 숙종이 인경왕후에게서 공주 둘을 얻었지만 요절하였고, 경종이나 영조는 왕비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했다. [9] 혜경궁 홍씨, 정병설 편역, 『한중록』, 문학동네, 2010. [10] 숙종이 인경왕후에게서 공주 둘을 얻었지만 요절하였고, 경종이나 영조는 왕비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했다. [11] 혜경궁 홍씨, 정병설 편역, 『한중록』, 문학동네, 2010. [12]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인이 그것이라도 손자라 하시며, 영조나 선희궁께서 약간이라도 봐주시거나 또는 경모궁께서 이것에게 혹하시면, 내 비록 도량이 있다 해도 부녀자의 마음으로 어찌 편안하리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아서 영조와 선희궁께서 알은체 않으시고" 라고 언급했다. 즉, 영조와 영빈 이씨 모두 사도세자의 서출에 대해서는 관심이나 애정을 주지 않았다. [13] 영조실록 105권, 영조 41년 4월 12일 정사 2번째기사. # [14] 영조실록 127권, 영조 52년 2월 27일 기사 4번째기사. # [15] 숙명공주의 후손인 심익운의 문집 '백일집(百一集)'에서 효종과 인선왕후가 함께 《삼국지연의》를 번역, 필사했다는 기록이 있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물 중 《손방연의》라는 책에는 영빈이씨의 영빈방 인장이 찍혀있으며, 정조의 왕비인 효의왕후도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필사한 유물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