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의 공주]][[분류:1754년 출생]][[분류:1821년 사망]] [include(틀:조선의 왕녀/중종 ~ 철종)] ||<-3><tablealign=right><tablewidth=350><tablebordercolor=#94153e><tablebgcolor=#fff,#1f202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94153e 0%, #94153e 20%, #94153e 80%, #94153e)" '''{{{#ffd400 조선 장조의 왕녀[br]{{{+1 청연공주 | 淸衍公主 }}}}}}'''}}}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CA5E59 0%, #CA5E59 20%, #CA5E59 80%, #CA5E59)" '''{{{#ffd400 조선 사도세자의 딸[br]{{{+1 청연군주 | 淸衍郡主 }}}}}}'''}}} || ||<bgcolor=#CA5E59> '''{{{#gold 출생}}}''' ||<-2>[[1754년]]^^([[영조]] 30년)^^ [[7월 14일]][* 승정원일기, 영조 30년 7월 14일. [[http://sjw.history.go.kr/id/SJW-F30070140-00500|#]] ] || ||<bgcolor=#CA5E59> '''{{{#gold 사망}}}''' ||<-2>[[1821년]]^^([[순조]] 21년)^^ [[6월 9일]][br]{{{-2 (향년 68세)}}} || ||<width=50><bgcolor=#CA5E59> '''{{{#gold 부왕}}}''' ||<-2>[[사도세자]] || ||<width=50><bgcolor=#CA5E59> '''{{{#gold 모후}}}''' ||<-2>[[혜경궁 홍씨]] || ||<width=50><bgcolor=#CA5E59> '''{{{#gold 부군}}}''' ||<-2>광은위 김기성[* 본관은 [[광산 김씨|광산]], 초명은 두성(斗性), 자는 성여(成汝), 호는 이길헌(頤吉軒), 시호는 효헌(孝憲)이다. ][* 원래 광은부위였으나 청연군주가 청연공주로 추증되면서, 광은부위도 광은위로 추증되었다. ] || ||<width=50><bgcolor=#CA5E59> '''{{{#gold 자녀}}}''' ||<-2>2남 1녀 ^^(장남)^^ 김재창 ^^(차남)^^ 김재삼 ^^(장녀)^^ 딸 || [목차] [clearfix] == 개요 == [[조선]]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의 적장녀. [[정조(조선)|정조]]의 [[동복형제|동복]] 동생으로, [[청선공주]]의 언니가 된다. 본래 작위는 세자의 적녀에게 주어지는 정2품 군주(郡主)였으며, 1899년(고종 36) [[대한제국]] 시기에 [[고종(조선)|고종]]이 사도세자를 추존하면서 청연군주에서 청연공주로 추증되었다. == 생애 == === 탄생 === 1754년(영조 30) 7월 14일, 당시 [[세자빈]]이었던 혜경궁 홍씨가 낳았다. [[한중록]]에 따르면, 원래 [[출산]] 예정일은 6월이었으나 달을 넘기는 바람에 한산부부인 이씨[* 혜경궁 홍씨의 어머니이자 [[홍봉한]]의 아내. ]가 대궐에서 50여 일을 머물렀다고 한다. >그해 7월 14일에 내 청연을 낳으니, 영조께서 "백여 년 만에 군주(郡主)가 처음 나니 귀하다" 하시며 기뻐하시더라.[* [[숙종(조선)|숙종]]이 [[인경왕후]]에게서 공주 둘을 얻었지만 요절하였고, [[경종(조선)|경종]]이나 [[영조]]는 왕비에게서 자식을 얻지 못했다. ] >---- >《한중록》[* 혜경궁 홍씨, 정병설 편역, 『한중록』, 문학동네, 2010. ] 여기서 영조의 편협함이 드러나는데, 청연군주와 같은 해 2월에 태어난 [[은언군]]을 비롯해서 사도세자의 [[서출]]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혜경궁 홍씨는 《한중록》에서 "[[은언군|인]]이 그것이라도 손자라 하시며, 영조나 [[영빈 이씨|선희궁]]께서 약간이라도 봐주시거나 또는 [[사도세자|경모궁]]께서 이것에게 혹하시면, 내 비록 도량이 있다 해도 부녀자의 마음으로 어찌 편안하리오. 그러나 이는 그렇지 않아서 영조와 선희궁께서 알은체 않으시고" 라고 언급했다. 즉, 영조와 영빈 이씨 모두 사도세자의 서출에 대해서는 관심이나 애정을 주지 않았다. ] 반면에 영조는 청연에 대해서는 어릴 적에 역질을 앓았다가 회복했을 때도 직접 보러 왔고, 혼인하여 일가를 이룬 뒤에도 사저에 들르는 모습이 보인다.[* 영조실록 105권, 영조 41년 4월 12일 정사 2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ua_14104012_002|#]] ] === 혼인 생활 === 1765년(영조 41) 참의 김상익의 아들 김기성의 아들이 간택되어 같은 해 4월 11일에 혼인하였다. 그런데 정조가 남긴 [[일성록|존현각일기]]를 보면 김상익에 대해 좋은 평을 찾아볼 수 없다. [[홍인한]]과 [[정후겸]]이 겨루는 형세를 관망하다가 권세를 독점할 생각을 한 사람으로 보고 있고, [[왕세손]]으로 있을 때는 "[[사도세자|소조]](小朝)의 차대(次對)에 한번도 들어오지 않았고" 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영조실록 127권, 영조 52년 2월 27일 기사 4번째기사. [[http://sillok.history.go.kr/id/kua_15202027_004|#]] ] 20세이던 [[1773년]], 동생 [[청선공주]], [[궁녀]]였던 후궁 [[의빈 성씨]]와 소설 《[[곽장양문록]]》을 필사하였다. 어린 나이에 [[혜경궁 홍씨]]의 궁녀로 들어온 의빈 성씨와의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다. 이때는 청연이 이미 혼인하여 궁 밖에서 생활하던 때였는데, 독서와 필사가 당대 왕실 여성들의 취미 생활로 추측된다.[* [[숙명공주]]의 후손인 심익운의 문집 '백일집(百一集)'에서 [[효종(조선)|효종]]과 [[인선왕후]]가 함께 《[[삼국지연의]]》를 번역, 필사했다는 기록이 있고,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물 중 《손방연의》라는 책에는 영빈이씨의 영빈방 인장이 찍혀있으며, 정조의 왕비인 [[효의왕후]]도 《만석군전》과 《곽자의전》을 필사한 유물이 남아있다. ] === 죽음 === 1821년(순조 21) 사망하였다. 혜경궁 홍씨의 자녀중 유일하게 어머니보다 오래 산 자녀이다. 청연은 남편과의 사이에 7남 2녀의 자녀를 낳았지만, 그 중 2남 1녀만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훗날 [[수원화성]]으로 능행할 때, 그녀의 두 아들도 동행한 외빈 명단에 있다. [[왕세자]]의 딸이기 때문에 내내 '청연군주'로 살았다. 1899년(고종 36) [[고종(조선)|고종]]이 5대조를 추존하면서 아버지 [[사도세자]]가 장조의황제로 추존되면서 공주(公主)로 추증되었다. 따라서 살아생전에 '공주'로 살았던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는 셈. == 유물 == * 《청연군주 노의》: 우리나라 복식사에서 빠트릴 수 없는 유물로, 1963년 경기도 광주에서 청연군주와 김기성의 합장묘를 이장하던 중 발굴한 200여점 중 하나다. 노의(露衣)는 왕세자빈, 왕세손빈, 내명부 여성과 대군의 정실인 부부인, 왕자의 정실인 군부인 등 정4품 이상의 정실부인이 착용하였다. * 《청연군주 당의》: 18세기 궁중용 당의의 모양을 알 수 있으며, 금실을 넣어 짠 석류와 칠보, 겉저고리와 안저고리 2겹으로 한 벌을 이루는 당의다. * 《청연군주 토황색 명주저고리》: 겹저고리 두 점이 끼워져 있는 4겹의 '두벌저고리' 형태다. == 청연 공주를 연기한 배우 == * 장수혜 - [[1998년]] [[MBC]] 《[[대왕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