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궐도》 경복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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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역사
창건 시기는 알 수 없다. 숙종 시기 혼란한 환국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는 1688년(숙종 14년)에 폐출당했다가 1694년(숙종 20년)에 복위했다. 인현왕후는 복위하기 전날에 미리 궁에 들어왔는데, 이 때 잠시 머문 곳이 창덕궁의 경복당이었다.
이미 복위 전부터 몸이 안 좋았던 인현왕후는 이곳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았다.# 인현왕후는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1701년(숙종 27년) 승하했다. 숙종은 세 번째 왕비로 인원왕후 김씨와 혼인했다. 경종 즉위 후 왕대비가 된 인원왕후는 경종과 대립하는 왕세제 이금에게 정치적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경종은 인원왕후를 공경한다는 뜻으로[2], 경복당을 옛 만수전 자리를 포함해서 큰 규모로 새로 짓고 경복전으로 이름을 바꾼 뒤 인원왕후를 모셨다.#
정조 시기에는 예순대비(정순왕후)가 여기서 존호를 여러 번 받았고,## 1805년(순조 5년)에는 이곳에서 승하했다. 이후 왕대비 김씨(효의왕후)도 머물렀다.#
1824년(순조 24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다.# 이후 현재까지 복구하지 않았다. 1828년(순조 28년) ~ 1830년(순조 30년)에 제작한 《동궐도》에는 빈 터로 그려두었다.
이미 복위 전부터 몸이 안 좋았던 인현왕후는 이곳에 머물면서 치료를 받았다.# 인현왕후는 결국 병을 이기지 못하고 1701년(숙종 27년) 승하했다. 숙종은 세 번째 왕비로 인원왕후 김씨와 혼인했다. 경종 즉위 후 왕대비가 된 인원왕후는 경종과 대립하는 왕세제 이금에게 정치적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경종은 인원왕후를 공경한다는 뜻으로[2], 경복당을 옛 만수전 자리를 포함해서 큰 규모로 새로 짓고 경복전으로 이름을 바꾼 뒤 인원왕후를 모셨다.#
정조 시기에는 예순대비(정순왕후)가 여기서 존호를 여러 번 받았고,## 1805년(순조 5년)에는 이곳에서 승하했다. 이후 왕대비 김씨(효의왕후)도 머물렀다.#
1824년(순조 24년) 화재로 불타 사라졌다.# 이후 현재까지 복구하지 않았다. 1828년(순조 28년) ~ 1830년(순조 30년)에 제작한 《동궐도》에는 빈 터로 그려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