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소개
2. 중선거구 시대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의원 선거구가 중선거구제로 개편되면서 종로구와 중구가 합구된 '종로구·중구' 선거구가 탄생했다. 정치적 의미가 큰 '정치 1번지' 종로가 포함된 선거구인 만큼 여전히 총선마다 '정치 1번지'로서의 역할을 나타냈다.
2.1. 9대 총선
2.2. 1977년 보궐선거
2.3. 10대 총선
2.4. 11대 총선
2.5. 12대 총선
여당인 민주정의당에서 현역 의원인 이종찬, 제1야당 민주한국당에서 9, 10대 의원을 지낸 정대철이 출마했고, 신생정당인 신한민주당에서는 총재인 이민우가 직접 출마했다. 선거 초반만 해도 청주 출신인 이민우에 비해 지역 기반이 탄탄한 이종찬, 정대철에게 유리한 판세로 흘러갔고, 당시 전두환에게 보고된 안기부 보고서 역시 "이종찬 1위, 정대철 2위, 이민우 3위"로 선거 결과를 예측했다. 그러나 선거 유세가 진행되면서 선명성을 내세운 신민당에 야당 성향 표심이 몰리기 시작했고, 선거 4일 전 김대중이 전격 귀국하면서 이민우가 정대철을 제치고 1위 이종찬과 불과 1,800여표 차이 나는 2위로 당선되었다. 그야말로 2.12 총선의 신민당 바람을 상징하는 선거구.
3. 소선거구 시대
3.1. 21대 총선
여야의 선거구 획정 논의에서 비례대표 의석 확대에 따라 상하한선이 높아지면 종로구와 중구의 합구가 확실시 되어 파장을 미쳤다.
253석 유지로 확정된 뒤 한동안 여야 각당은 한동안 기존 선거구 존치를 전제로 후보자 선출을 논의했으나 4+1 주장인 김제시·부안군을, 한국당 주장인 동두천시·연천군을 하든 종로구+중구는 상한선을 넘지 않기 때문에 종로구·중구/성동구 갑/성동구 을 선거구로 획정해야 할 것으로 분석되어 일각에서는 종로구 중구 선거구의 부활을 점쳤다.
서울 원도심의 인구 감소로 2020년 2월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종로구·중구/성동구 갑/성동구 을 선거구로 획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 방향에서 획정을 논의하게 되면서 여야 구도에 큰 파장이 미치게 되었다.
2020년 3월 3일 21대 총선 국회의원선거선거구획정위가 확정한 선거구획정안에[1] 따라 종로구 중구 단일선거구의 인구수가 인구상한을 초과하게 되어[2] 기존 종로구, 중구성동구 갑/을 선거구는 유지되며, 선거구획정안이 본회의 표결을 통과할 경우 최종확정된다.
최종적으로 국회의원선거선거구획정위가 확정한 선거구획정안은 국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였으나 국회 여야합의로 선거구당 인구를 139,000명 ~ 278,000명으로 설정한 합의안을 의결하면서 21대 총선에서는 합구가 실현되지 않았다.
253석 유지로 확정된 뒤 한동안 여야 각당은 한동안 기존 선거구 존치를 전제로 후보자 선출을 논의했으나 4+1 주장인 김제시·부안군을, 한국당 주장인 동두천시·연천군을 하든 종로구+중구는 상한선을 넘지 않기 때문에 종로구·중구/성동구 갑/성동구 을 선거구로 획정해야 할 것으로 분석되어 일각에서는 종로구 중구 선거구의 부활을 점쳤다.
서울 원도심의 인구 감소로 2020년 2월 선거구획정위원회에서 종로구·중구/성동구 갑/성동구 을 선거구로 획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그 방향에서 획정을 논의하게 되면서 여야 구도에 큰 파장이 미치게 되었다.
2020년 3월 3일 21대 총선 국회의원선거선거구획정위가 확정한 선거구획정안에[1] 따라 종로구 중구 단일선거구의 인구수가 인구상한을 초과하게 되어[2] 기존 종로구, 중구성동구 갑/을 선거구는 유지되며, 선거구획정안이 본회의 표결을 통과할 경우 최종확정된다.
최종적으로 국회의원선거선거구획정위가 확정한 선거구획정안은 국회의 반대로 통과되지 못하였으나 국회 여야합의로 선거구당 인구를 139,000명 ~ 278,000명으로 설정한 합의안을 의결하면서 21대 총선에서는 합구가 실현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