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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위(太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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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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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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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백(志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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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조정(趙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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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 기간
| ?년 ~ 1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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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 익주(益州) 촉군(蜀郡) 성도현(成都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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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기간
| 사공 재임기간
| 141년 3월 22일 ~ 146년 윤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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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재임기간
| 146년 윤6월 5일 ~ 14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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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위 재임기간
| 147년 10월 ~ 14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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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태위 재임기간
| 152년 12월 ~ 15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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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2.1. 초기 생애
2.2. 삼공에 오르다
141년 3월 22일 사공(司空) 곽건(郭虔)이 면직되면서 사공이 되었다. 조계는 6년동안 사공의 자리를 지켰다.
146년 윤6월 1일 한질제가 양기(梁冀)에게 독살당하자 태위(太尉) 이고(李固), 사도(司徒) 호광(胡廣), 대홍려(大鴻臚) 두교(杜喬) 등과 함께 처음에는 청하왕(淸河王) 유산(劉蒜)을 황제로 옹립해야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조등(曹騰)에게 언질을 받은 양기에 협박과도 같은 말에 두려워하여 유지(劉志)를 옹립시켜야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태위 이고와 대홍려 두교만은 끝까지 반대하여 결국 이고가 파직당하고 윤6월 5일 사도이던 호광이 태위로 조계가 사도가 되었다.
146년 윤6월 1일 한질제가 양기(梁冀)에게 독살당하자 태위(太尉) 이고(李固), 사도(司徒) 호광(胡廣), 대홍려(大鴻臚) 두교(杜喬) 등과 함께 처음에는 청하왕(淸河王) 유산(劉蒜)을 황제로 옹립해야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조등(曹騰)에게 언질을 받은 양기에 협박과도 같은 말에 두려워하여 유지(劉志)를 옹립시켜야한다고 말을 바꾸었다.
그러나 태위 이고와 대홍려 두교만은 끝까지 반대하여 결국 이고가 파직당하고 윤6월 5일 사도이던 호광이 태위로 조계가 사도가 되었다.
2.3. 이고의 편지를 읽고 눈물 흘리다.
후에 호광이 면직당하고 이번엔 두교가 태위가 되지만, 양기가 거슬리다는 이유로 파직시켜 147년 10월 태위가 된다. 그리고 황제를 세운 공으로 주정후(廚亭侯)가 된다.
11월 이고는 양기에게 무고를 당해 옥중에 갇히자 마지막 힘을 다해 호광과 조계한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를 받은 호광과 조계는 편지를 읽고서 비통해하여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고는 결국 옥사한다.
11월 이고는 양기에게 무고를 당해 옥중에 갇히자 마지막 힘을 다해 호광과 조계한테 편지를 쓴다. 이 편지를 받은 호광과 조계는 편지를 읽고서 비통해하여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고는 결국 옥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