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천주교 제주교구
Diocese of Cheju Dioecesis Cheiuensis | |
형태
| 가톨릭 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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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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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구
| 광주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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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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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대리
| 강형민 다니엘 신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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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성인
| 복되신 마리아의 원죄없으신 잉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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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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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청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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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교좌
| 중앙주교좌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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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현황
| 신자수 75,579명
주교 2명, 사제 47명 본당 28개, 공소 8개 (한국천주교회통계2018 기준)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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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역사
1.2. 역대 교구장
2. 관할 구역
제주교구는 2018년 현재 4개 지구에 28개의 본당이 소속되어 있다.
볼드 + 밑줄은 주교좌 본당이다. 괄호표기는 본당이 관할하고 있는 소속 공소이다.
볼드 + 밑줄은 주교좌 본당이다. 괄호표기는 본당이 관할하고 있는 소속 공소이다.
지구명
| 본당수
| 본당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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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부지구
| 07
| 중앙, 노형, 서문(추자공소), 신제주, 연동, 정난주, 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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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부지구
| 07
| 광양, 김기량, 김녕(세화공소), 동광, 동문, 조천, 화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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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지구
| 07
| 고산(청수공소), 금악, 모슬포(무릉공소), 신창(용수공소, 조수공소, 한원공소), 애월, 한림, 화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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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지구
| 07
| 남원, 서귀복자, 서귀포, 성산포(우도공소), 중문, 표선, 효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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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교구 내 성지
미사 있는 성지[11]
| 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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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교구 내 기관
3.1. 학교법인 신성학원
4. 관련 사건사고
[1] 화북성당 주임 겸직[2] 화북성당 주임 겸직[3] 이전 문서에 제주교구 설정 이후 처음으로 탄생한 제주특별자치도 출신 주교라고 써져 있었지만, 정확히 말하면 첫 제주교구 출신 교구장이라고 해야 맞다. 왜냐하면 문창우 주교는 1963년 부산에서 출생해 1966년 제주도로 건너갔기 때문. 강우일 교구장 주교가 2020년 11월 22일 교구장에서 물러나게되었고 후임 제주교구장으로 임명되었다.[4] 단순한 신자 숫자로 보면 제주교구의 교세는 안동교구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작다. 그러나 교구 관내 총 인구수 대비 천주교 신자 비율만 본다면 육지 교구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교세다. 국내 최대 교구인 서울대교구의 교구 관내 총 인구수 대비 천주교 신자 비율이 15.1%이고 두 번째로 교세가 큰 수원교구는 교구 관내 총 인구수 대비 천주교 신자 비율이 11.0%, 인천교구는 11.6%에 불과하다. 제주도라는 지역 자체의 인구가 적고 전통적으로 제주지역 내에서 천주교에 대한 인식이 한때 좋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재의 교세는 상당히 긍정적인 점으로 볼 수 있다.[5] 초대 광주대교구의 교구장이였다. 광주대교구장을 사임한 후 새로 설정된 제주지목구장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정식 교구가 아니였기에 누미디아의 튜부내의 명의 대주교가 되었다.[6] 초대 광주대교구의 교구장이였다. 광주대교구장을 사임한 후 새로 설정된 제주지목구장으로 자리를 이동하였다. 정식 교구가 아니였기에 누미디아의 튜부내의 명의 대주교가 되었다.[7] 최초의 제주 출신 교구장이다.[8] 최초의 제주 출신 교구장이다.[9] 예를 들면 사제 서품식 등[10] 전담신부가 상주하고 있는 성지이다.[11] 전담신부가 상주하고 있는 성지이다.[12] 현재의 제주교구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이기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교구 설정 한참 전(1901년)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한국 전역은 조선대목구(현재의 서울대교구) 소속이었다.[13] 현재의 제주교구 관내에서 발생한 사건이기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교구 설정 한참 전(1901년)에 벌어진 일이다. 당시 한국 전역은 조선대목구(현재의 서울대교구) 소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