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르 국민투표(Saar status referendum)는 1935년, 1955년 2차례 있었다.
1. 1935년 자르 투표
1.1. 개요
1.2. 기원
1.3. 전개
1.4. 결과
독일 편입
| 477,089
| 90.73%
|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 46,613
| 8.87%
|
프랑스 편입
| 2,124
| 0.40%
|
부정표
| 2,161
| -
|
독일 편입파의 압승 프랑스 지못미 1탄
물론 나치의 뒷공작도 엄연히 존재했고, 실제 지역 여론보다 독일 편입파의 표수가 뻥튀기된건 사실이나, 당시 자르 사람들은 자신들을 독일인으로 인식하지 프랑스인으로는 인식하지 않았으며, 프랑스의 경제수탈에 대한 반감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다. 나치의 뒷공작이 없었어도 자르 주민들은 독일로의 편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히틀러와 나치의 입장에서 자르 국민투표를 박빙으로 승리하는 것보다 압승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기에 뒷공작을 펼친것.
이리 탈도 많았던 국민투표였지만 국제연맹은 자르 위임통치령이 나치 독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고, 1935년 3월 1일, 독일의 일부가 되었다.
물론 나치의 뒷공작도 엄연히 존재했고, 실제 지역 여론보다 독일 편입파의 표수가 뻥튀기된건 사실이나, 당시 자르 사람들은 자신들을 독일인으로 인식하지 프랑스인으로는 인식하지 않았으며, 프랑스의 경제수탈에 대한 반감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다. 나치의 뒷공작이 없었어도 자르 주민들은 독일로의 편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히틀러와 나치의 입장에서 자르 국민투표를 박빙으로 승리하는 것보다 압승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기에 뒷공작을 펼친것.
이리 탈도 많았던 국민투표였지만 국제연맹은 자르 위임통치령이 나치 독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고, 1935년 3월 1일, 독일의 일부가 되었다.
2. 1955년 자르 투표
2.1. 결과
찬성
| 201,973
| 32.29%
|
반대
| 423,434
| 67.71%
|
부정표
| 15,725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