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자르 국민투표(Saar status referendum)는 1935년, 1955년 2차례 있었다. == 1935년 자르 투표 == === 개요 === [[1935년]] [[1월 13일]], [[자르 분지 지역]]에서 이루어진 국민투표로서 이 투표의 결과로 자르 위임통치령이 [[나치 독일]]에 합병됐다. === 기원 === [[자르]]는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지대의 약 2500 제곱킬로미터의 지방이다. 자르는 그리 큰 지방은 아니었지만 프랑스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 지역의 자원에 탐을 냈고 자르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의 결과로 독일에서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으로 분리되어 프랑스는 자르의 석탄 광산의 독점권을 얻었다. 베르사유 조약은 [[자르 보호령]]이 조약 조인 이후 15년간의 국제연맹의 감찰을 받고 국민투표를 통해 그 후의 향방을 결정할 계획이었다.[* 국민투표로 자르 주민들은 독일로 편입되거나,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으로 남거나, 아니면 프랑스로 편입될 수 있었다.] === 전개 === [[1934년]] 말, 자르 위임통치령에는 예정된 국민투표 기간동안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연맹에서 회원국의 군대를 파견한다. 자르의 주민들은 독일에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이 집권하기 전에는 독일로의 편입을 전반적으로 지지했다. 하지만 나치의 대두와 독일에서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탄압과 종교의 탄압이 알려지자 노동자들, 그리고 가톨릭 교단들 사이에서는 국제연맹 위임통치령으로 남자는 의견이 퍼지기 시작하였다. 불안해진 나치 독일은 지역민들에 대한 압력과 뒷공작을 펼치면서 투표가 진행된다. === 결과 === || 독일 편입 || 477,089 || 90.73% || || 국제연맹 위임통치령 || 46,613 || 8.87% || || 프랑스 편입 || 2,124 || 0.40% || || 부정표 || 2,161|| - || '''독일 편입파의 압승''' ~~프랑스 지못미 1탄~~ 물론 나치의 뒷공작도 엄연히 존재했고, 실제 지역 여론보다 독일 편입파의 표수가 뻥튀기된건 사실이나, 당시 자르 사람들은 자신들을 [[독일인]]으로 인식하지 [[프랑스인]]으로는 인식하지 않았으며, 프랑스의 경제수탈에 대한 반감도 어느정도 가지고 있었다. 나치의 뒷공작이 없었어도 자르 주민들은 독일로의 편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히틀러와 나치의 입장에서 자르 국민투표를 박빙으로 승리하는 것보다 압승하는 것이 더 바람직했기에 뒷공작을 펼친것. 이리 탈도 많았던 국민투표였지만 [[국제연맹]]은 자르 위임통치령이 나치 독일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고, [[1935년]] [[3월 1일]], 독일의 일부가 되었다. == 1955년 자르 투표 == [[1955년]] [[10월 23일]], 프랑스 보호령이던 [[자르 보호령]]에서 있었던 국민투표. 이 국민투표는 프랑스가 제안한 "프랑스와의 경제동맹을 유지한 채 현상유지"에 대한 것이다. === 결과 === || 찬성 || 201,973 || 32.29% || || 반대 || 423,434 || 67.71% || || 부정표 || 15,725 || - || '''독일 편입파의 승리''' ~~프랑스 지못미 2탄~~[* 사실상 이 주민투표에 대한 반대는 주민들의 [[서독]]과의 재통일 의사로 간주되었다.] 프랑스는 자신의 제안이 부결되자 투표 사흘 뒤 서독과 자르 조약을 체결하여 1957년 1월 1일에 [[자를란트]]가 공식적으로 서독으로 반환되었다. 이리하여 자를란트는 하나의 연방주로 편입되어 현재에 이른다. == 관련 문서 == * [[자를란트]] * [[자르 분지 지역]] * [[자르 보호령]] * [[오스트리아 병합]] * [[국제연맹]] [[분류:나치 독일]][[분류:전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