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려의 문신. 초명은 임극인(任克仁)이었다.
2. 생애
척신 임원후의 아들로 명종 때 과거에 급제한다. 형 임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의종 때는 외척으로 견제를 받다 왕이 바뀌고 무신정권이 들어선 뒤에야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명종 16년(1186)년 예부시랑으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금나라에서 횡선사를 보낸 것에 감사의 뜻을 전한다. 16년간 지제고를 맡아 중요한 공문서를 관직은 명종 말에 참지정사까지 오른다.
신종 즉위년(1197) 중서시랑평장사에 임명되고, 희종 즉위 전후로 수태부 문하시랑평장사로 승진한다. 신종과 희종 대에 임유는 과거를 4번이나 주관해 조충, 이규보, 김창, 유승단 등 인재를 선발한다.
말년의 임유는 전보다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는데 금으로 대장경을 써(금자대장경) 반정도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희종 7년(1211) 사돈 최충헌이 왕을 폐위시킬 때 임유는 최우와 함께 한남공 왕정의 사저로 가서 한남공을 강안전으로 옮긴 뒤에 새 왕으로 받든다. 이 왕이 바로 강종. 임유는 강종 원년(1212) 64세의 나이로 죽는다. 사후 양숙(良淑)의 시호를 받으며 희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신종 즉위년(1197) 중서시랑평장사에 임명되고, 희종 즉위 전후로 수태부 문하시랑평장사로 승진한다. 신종과 희종 대에 임유는 과거를 4번이나 주관해 조충, 이규보, 김창, 유승단 등 인재를 선발한다.
말년의 임유는 전보다 독실한 불교 신자가 되는데 금으로 대장경을 써(금자대장경) 반정도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희종 7년(1211) 사돈 최충헌이 왕을 폐위시킬 때 임유는 최우와 함께 한남공 왕정의 사저로 가서 한남공을 강안전으로 옮긴 뒤에 새 왕으로 받든다. 이 왕이 바로 강종. 임유는 강종 원년(1212) 64세의 나이로 죽는다. 사후 양숙(良淑)의 시호를 받으며 희종의 묘정에 배향된다.
3. 평가
성품은 욕심이 없고 자비로우며 온화했다. 가문의 권세를 믿고 남에게 교만하지 않았으며 노비나 천인에게도 꾸짖거나 욕함이 없었다.
4. 가족관계
- 부: 임원후
- 본인: 임유
- 아들: 임경숙
- 아들: 임경겸
- 손자: 임항
- 아들: 임효순
- 아들: 임경순
아들이 최충헌의 딸과 결혼해 사돈 관계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