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by(伊勢原市,ruby=いせはらし)]
이세하라시 / Isehara City | |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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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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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 간토 지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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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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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55.56k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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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 102,157명[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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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 시행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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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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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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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목
| 모밀잣밤나무(シ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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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산새(ヤマド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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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E5%A4%A7%E5%B1%B1%E9%98%BF%E5%A4%AB%E5%88%A9%E7%A5%9E%E7%A4%BE_%E4%B8%8B%E7%A4%BE%E6%8B%9D%E6%AE%BF.jpg
▲오야마 아후리 신사(大山阿夫利神社)
伊勢原市 / いせはらし
1. 개요
2. 시명의 유래
3. 역사
조몬 시대 당시의 유적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약 1만 2천년 전부터 사람이 산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서 발굴된 토기는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도 오래된 축에 낀다고 한다. 약 2500년 전부터 벼 농사가 전해졌다고 한다.
헤이안 시대 쓰보노우치(坪ノ内)의 에노토(榎戸) 유적, 누마메(沼目)의 덴노바라(天王原) 유적, 히가시오다케(東大竹)의 이치바(市場) 유적 등 100채를 넘는 주거지가 발견되어 이 지역에도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 당시 오카자키(岡崎)의 무료지(無量寺) 주변부터 히라쓰카 시역에 걸쳐서 오카자키 성(岡崎城)이라고 불렸던 거관(居館)[3]이 있다고 전해진다.
1889년 이세하라 촌(伊勢原村), 이타도 촌(板戸村), 히가시오다케 촌(東大竹村), 다나카 촌(田中村), 이케바타 촌(池端村)이 합병하여 오스미 군(大住郡) 이세하라 정(伊勢原町)이 되었다. 이 당시 이 지역의 인구는 약 1만 7천 명으로, 후에 학교나 우체국, 상공회 등의 시설들이 차례차례 정비되어 나갔다.
당시 이 지역의 행정 구역은 이렇다.
헤이안 시대 쓰보노우치(坪ノ内)의 에노토(榎戸) 유적, 누마메(沼目)의 덴노바라(天王原) 유적, 히가시오다케(東大竹)의 이치바(市場) 유적 등 100채를 넘는 주거지가 발견되어 이 지역에도 예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가마쿠라 시대 당시 오카자키(岡崎)의 무료지(無量寺) 주변부터 히라쓰카 시역에 걸쳐서 오카자키 성(岡崎城)이라고 불렸던 거관(居館)[3]이 있다고 전해진다.
1889년 이세하라 촌(伊勢原村), 이타도 촌(板戸村), 히가시오다케 촌(東大竹村), 다나카 촌(田中村), 이케바타 촌(池端村)이 합병하여 오스미 군(大住郡) 이세하라 정(伊勢原町)이 되었다. 이 당시 이 지역의 인구는 약 1만 7천 명으로, 후에 학교나 우체국, 상공회 등의 시설들이 차례차례 정비되어 나갔다.
당시 이 지역의 행정 구역은 이렇다.
- 오야마 정(大山町)
- 나루세 촌(成瀬村)
- 오타 촌(大田村)
- 다카베야 촌(高部屋村)
- 히비타 촌(比々多村)
1896년 오스미 군이 유루기 군(淘綾郡)에 통합되어, 나카 군(中郡) 소속으로 변경되었다. 1923년 관동 대지진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1927년 오다큐 전철 오다큐 오다와라선이 개통되었고, 이세하라역이 설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