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서이궁(西離宮)의 이름을 연희궁(衍禧宮)이라 하였다.
2. 역사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조선 개국 당시 현 경복궁 터, 왕십리와 함께 궁궐 터 후보지로 고려되었으나 다소 좁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탈락했다. 이후 1420년에 세종이 아버지 태종을 위해 현 위치에다가 지었으며, 세종 본인도 잠시 머물렀지만 독사나 해충이 많단 이유로 대신들은 거처를 옮길 것을 요구하였다. 세종은 뒤에 누에를 치는 잠실도회(蠶室都會)를 설치했고 서잠실(西蠶室)이라고 불렀다.
1505년(연산군 11년)에 연산군이 연희궁을 연회장으로 꾸몄고[1] 그로 인해 이궁의 지위는 상실되었다.
광해군일기 114권, 광해 9년 4월 28일 임술 1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 45년. 천추사 윤안국과 서장관 안경이 배사하다
천추사 윤안국과 서장관 안경이 배사하였다. 지난해 동지사 목대흠이 아뢴, 융덕전(隆德殿)과 연희궁(延喜宮)이 모두 불에 탔다고 한 데 대한 진위문서를 수찬(修撰)하고 예물을 갖추어서 윤안국 등의 행차에 부쳐 보내었다.
3. 여담
[1] 당시에 여기서 파티가 자주 열렸는데 '연희궁 까마귀 골 수박 파먹는 듯 하다'란 속담이 생겼다. 뜻은 한 가지 일에만 푹 빠지는 걸 뜻한다.[2] 현재 잠실이라고 하면 이쪽을 지칭한다.[3] 신잠실이 있던 동네는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이다. 원래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였다가, 1960년대에 서울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송파구 잠실과 구분하기 위해 잠원동으로 개칭했다.[4] 현재 잠실이라고 하면 이쪽을 지칭한다.[5] 신잠실이 있던 동네는 현재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이다. 원래 경기도 시흥군 신동면 잠실리였다가, 1960년대에 서울에 편입되면서 현재의 송파구 잠실과 구분하기 위해 잠원동으로 개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