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3년 충청도 청주목 산내이상면 관정리(현 충청북도청주시상당구낭성면 관정리 묵정마을)[3]에서 아버지 신면휴(申冕休)와 어머니 안동 김씨 김노승(金魯承)의 딸 사이의 3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대한제국 때 만민공동회와 독립협회에 가담했다. 그 후 미국에 유학,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고등과 및 의과·문과를 졸업하였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 및 법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더럼 스티븐스 저격 사건 당시에 전명운과 장인환의 재판에서 통역을 맡기도 했다.
1912년 YMCA 청년회 이사와 배재학당 교장을 지냈다. 1919년의 3.1 운동에는 참여를 거부하였다. 1920년 조선체육회(현 대한체육회) 발기에 참여하였으며 제7대 회장을 지냈다. 1927년 이상재, 허헌, 김병로 등과 함께 신간회 조직에 참여하여 개신교 대표의 한사람으로 활동했다.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하여 조선임전보국단 상무이사#, 임전대책협의회 위원#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