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상세
전간기에는 건축가를 꿈꾸면서 시온주의를 신봉했는데, 오스트리아와 폴란드 및 체코슬로바키아와 소비에트 연방을 방랑하면서 대학교까지 공부하고 취직했다고 전해진다. 소련군이 르부프를 점령하자 우크라이나 소비에트에서 주경야독했다는데, 독소전쟁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친척 89명이 홀로코스트에 휘말려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만이 살아남아 1945년 5월에 미군에 의해 마우트하우젠 강제수용소에서 겨우 해방되었다.
1940년대 후반기에 나치 독일의 전범들은 남아메리카(아르헨티나, 칠레)와 중,동아시아 혹은 북아프리카(이집트, 시리아)를 중심으로 도망쳤다. 이들 나치 전범들을 잡기 위해 비엔나에 본사를 둔 유대인 박해 기록 센터에 들어간 비젠탈은 적극적인 행동력과 첩보망을 활용하여 도주한 나치 전범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1940년대 후반기에 나치 독일의 전범들은 남아메리카(아르헨티나, 칠레)와 중,동아시아 혹은 북아프리카(이집트, 시리아)를 중심으로 도망쳤다. 이들 나치 전범들을 잡기 위해 비엔나에 본사를 둔 유대인 박해 기록 센터에 들어간 비젠탈은 적극적인 행동력과 첩보망을 활용하여 도주한 나치 전범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 카를 요제프 질버바워(Karl Josef Silberbauer): 안네 프랑크와 은신처 사람들을 체포해 강제 수용소로 보냈던 게슈타포.
- 마르틴 보어만: 종전시 음독자살한 걸로 알려졌지만 음모론 때문에 계속 추적했다.
- 요제프 멩겔레: 아이히만을 잡을 당시 이 자도 아르헨티나에 있었지만, 아이히만을 체포해 국외로 빼돌리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기 때문에 멩겔레는 잡지 못하고 놔둘 수밖에 없었다. 이후 멩겔레는 아이히만 체포 뉴스를 듣고 도주, 후일 브라질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으며, 1979년 DNA가 확인됐다.
- 오토 슈코르체니: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로 불렸던 인물. 물론 그는 홀로코스트랑 무관했지만 매우 유명한 인사였기 때문에 상징성 차원에서 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3. 이야깃거리
- 모사드 항목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엄연한 주권국가들에서 사법체계고 뭐고 깡그리 개무시하고 납치 및 사법행위를 벌이는 게 옳냐는 비판도 있다.
- 아래의 목록처럼 다른 나라에 대한 간섭이 많은데 이게 정당한지는 논란이 된다.
- 1977년 '홀로코스트의 기억을 풍화시키지 않는 시설'을 모토로 미국 LA에 시몬 비젠탈 센터가 발족되었다. 다만 당사자는 이 조직의 운영에는 거의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며 시몬 비젠탈이 타계한 2005년 이후로도 건재하다. 이 단체의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 1995년 과거 일본 극우 잡지인 마르코 폴로가 홀로코스트 날조론 기사를 게재하자 미국 내 유태인 단체에게 알리며 같이 압력을 가해 데꿀멍시켜 해당 잡지를 퇴갤시킨 적이 있다. 일본은 사회의 우경화와 맞물려 나치에 대한 옹호 서적이 지속적으로 나오는터라 이 단체에 수차례 비판을 받는다. 美 유대단체, '유대음모론' 日서적 판매중지 요구(연합뉴스)
- 2018년 방탄소년단의 한 멤버가 수년전 찍은 화보에서 나치 문양이 그려진 모자를 썼으며, 그들이 참여한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콘서트 장면의 깃발이 나치 깃발과 비슷하다고 주장하며, 시몬 비젠탈 센터 부소장 랍비 아브라함 쿠퍼의 명의로 공연자와 기획자의 사과를 요구하였다. 홈페이지 뉴스
- 다만 유대인과 상관 없는 원폭(광복) 티셔츠에 대해서도 문제 삼은 부분을 보아, 원폭(광복)티셔츠를 문제 삼은 일본 우익이 이 단체와 관련된 일본 인사에게 영향력을 끼쳐(혹은 동일인) 위 연예인에 대한 제보를 하고, 유대인과 상관 없는 원폭 피해 이야기까지 끼워 놓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 이처럼 최근에는 해당 센터에 일본 극우들이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이는 일본 극우인사 중에 유태인과 일본인은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 주장하는 일유동조론을 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기사
유대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동맹국이었던 일본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뭐병스러울 듯(...)
[1] 1987년 TV영화 소비보르 탈출(Escape From Sobibor)에서는 유대인 재소자에게 칼에 맞아 죽는 것으로 각색되었지만 실제로는 달아나서 브라질에서 숨어살다가 1978년 5월 30일 시몬 비젠탈이 추적 후 체포했다. 그러나 브라질 법무장관이 이스라엘, 폴란드, 오스트리아 정부의 범죄인 인도 요구를 모두거절했기 때문에 계속 브라질에 있다가 1980년 10월 자택의 화장실에서 가슴에 칼이 꽂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변호사는 그가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의문스러운 점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2] 1987년 TV영화 소비보르 탈출(Escape From Sobibor)에서는 유대인 재소자에게 칼에 맞아 죽는 것으로 각색되었지만 실제로는 달아나서 브라질에서 숨어살다가 1978년 5월 30일 시몬 비젠탈이 추적 후 체포했다. 그러나 브라질 법무장관이 이스라엘, 폴란드, 오스트리아 정부의 범죄인 인도 요구를 모두거절했기 때문에 계속 브라질에 있다가 1980년 10월 자택의 화장실에서 가슴에 칼이 꽂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변호사는 그가 자살했다고 발표했지만 의문스러운 점이 상당히 많다고 한다. [3] 이 당시 브루너는 시리아 정부의 비호를 받아서 첩보 교육을 했다고 하며, 이스라엘 모사드에서 그를 암살하기 위해 1961,1980년에 걸쳐 폭탄 편지를 두번 보내 한 눈과 손가락 1개를 잃었지만 목숨에 지장이 없었다. 1985년에 사진을 찍으면서 유태인이 죽이려고 해도 못 이뤄서 야훼에게 징징거린다라고 비웃듯이 글을 써서 해외로 퍼뜨리는 배짱을 과시했다. 프랑스와 독일이 그의 소환을 요구했으나 시리아 정부에서 듣는 척도 안하고 그게 누구냐? 라고 무시하면서 국빈으로 우대했고 결국 2014년 12월 1일 외신 보도로 그는 2010년 시리아에서 천수를 누리고 88세로 사망했다고 보도됐다.연합뉴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