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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사 마애불입상
| 성공회 서울성당
| 천도교중앙대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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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서울교구의 주교좌
서울 성모마리아와 성 니콜라 주교좌성당 大韓聖公會 서울主敎座聖堂 | Sts. Mary & Nicholas' Anglican Cathedral, Seoul | |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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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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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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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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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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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할사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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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임 사제
| 주낙현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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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정보
| 1926년 5월 2일 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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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자 아서 딕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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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로마네스크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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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9월 4일 착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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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5월 2일 완공[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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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영어: Sts. Mary & Nicholas' Anglican Cathedral, Seoul, Korea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정동)에 자리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주보성인은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
성당의 정식 명칭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大韓聖公會 서울主敎座聖堂)이고, 주교좌성당을 보통 대성당이라고 하기 때문에 줄여서 '성공회 서울대성당' 또는 그냥 '서울대성당'[7]으로 부르기도 한다. 성당의 위치가 중구 정동이기 때문에 성공회 정동교회/정동성당으로 부르기도 한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을 기본으로, 기와지붕이나 한옥 창살, 오방색 등과 같은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을 절충한 성당이다.
향린교회와 함께 1987년 6월 항쟁이 시작된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 중 하나이다. 명동성당에 가려진 성당과 교회
1978년 성공회 서울성당(聖公會 서울聖堂)이라는 명칭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됐다. 문화재[8]로 지정된 만큼 방문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성당이 개방되어있다.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개방되며, 봉사자의 가이드 아래 대성당을 둘려볼 수 있다. 때론 담당 부제(Deacon)의 설명하에 성공회의 전반적인 것들도 들을 수 있다.
시청역 3번 출구에선 도보로 3분, 광화문역 6번 출구 기점으론 걸어서 6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가급적이면 시청역 3번 출구로 나오는 것을 권장한다.
2. 역사
파일:republic-of-korea-435324_960_720.jpg
1890년 12월 21일, 당시 조선에 성공회 선교를 위해 영국으로부터 파송된 찰스 존 코프 주교[9]와 신자들이 현재 성당이 위치해 있는 곳의 한옥을 매입하면서부터 서울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성당의 이름은 “장림성당(The Church of Advent)”이었다. 이후 1892년 11월 17일 같은 자리에 새 한옥을 짓고 축성식을 거행했다. 이후, 1909년 성당 주변의 땅을 매입해 부지를 확장하고, 1910년 열린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하게 된다.
이후, 1911년 영국왕립건축협회 소속의 아서 딕슨에 의해 성당의 설계도 및 모형이 완성되었고, 1922년 9월 24일, 성당 건축을 시작한다.[10]
파일:external/www.laurelcottagegenealogy.com/Seoul-Anglican-Cathedral-pc1-194x300.jpg
1950년대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엽서에 인쇄된 성공회서울성당의 모습. 현재의 성당과 비교했을 때 건물의 길이가 짧다.
맨 위의 성당 전체사진 오른쪽 긴 지붕의 색깔이 짙어지는 지점이 있는데, 실제로 다른 시기에 공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붕 색깔이 짙은 오른쪽 부분이 1996년 증축되었는데, 1926년 당시 재정 문제로 애초 설계와 달리 밝은 주황색 부분만으로 완공되었으며, 그 앞에는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있었다. 그런데 1992년, 영국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던 원 설계도가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발견[11]되면서 문화재의 가치를 살리면서도 성당의 기능도 확장하는 증축을 할 수 있었다.
성당 앞을 가로막던 서울지방국세청 남대문별관이 철거되어 세종대로에서 바로 성당이 보이게 되었다. 이전에도 정동의 명소 중 하나였으나 인지도가 더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성공회의 '어머니 성당'[12]으로 인식되고는 하지만 꽤 좁은 부지에 지어졌다.[13] 주차장 규모도 협소하여 성당에서 감사성찬례가 끝나고 광고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광고를 늘 할 정도로 부지가 좁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대축일 때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신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주차장에 빼곡히 차가 들어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1890년 12월 21일, 당시 조선에 성공회 선교를 위해 영국으로부터 파송된 찰스 존 코프 주교[9]와 신자들이 현재 성당이 위치해 있는 곳의 한옥을 매입하면서부터 서울대성당의 역사가 시작된다. 당시 성당의 이름은 “장림성당(The Church of Advent)”이었다. 이후 1892년 11월 17일 같은 자리에 새 한옥을 짓고 축성식을 거행했다. 이후, 1909년 성당 주변의 땅을 매입해 부지를 확장하고, 1910년 열린 첫 교구회의에서 주교좌성당 건축을 결의하게 된다.
이후, 1911년 영국왕립건축협회 소속의 아서 딕슨에 의해 성당의 설계도 및 모형이 완성되었고, 1922년 9월 24일, 성당 건축을 시작한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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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엽서에 인쇄된 성공회서울성당의 모습. 현재의 성당과 비교했을 때 건물의 길이가 짧다.
맨 위의 성당 전체사진 오른쪽 긴 지붕의 색깔이 짙어지는 지점이 있는데, 실제로 다른 시기에 공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붕 색깔이 짙은 오른쪽 부분이 1996년 증축되었는데, 1926년 당시 재정 문제로 애초 설계와 달리 밝은 주황색 부분만으로 완공되었으며, 그 앞에는 작은 연못과 정원이 있었다. 그런데 1992년, 영국에서 없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던 원 설계도가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우연찮게 발견[11]되면서 문화재의 가치를 살리면서도 성당의 기능도 확장하는 증축을 할 수 있었다.
성당 앞을 가로막던 서울지방국세청 남대문별관이 철거되어 세종대로에서 바로 성당이 보이게 되었다. 이전에도 정동의 명소 중 하나였으나 인지도가 더 늘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성공회의 '어머니 성당'[12]으로 인식되고는 하지만 꽤 좁은 부지에 지어졌다.[13] 주차장 규모도 협소하여 성당에서 감사성찬례가 끝나고 광고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광고를 늘 할 정도로 부지가 좁다.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대축일 때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신자들이 모이기 때문에 조그마한 주차장에 빼곡히 차가 들어차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3. 감사성찬례(예배, 미사)
감사성찬례(Eucharist)는 월요일-목요일과 토요일은 오전 7시에, 금요일은 정오에, 주일에는 오전 7, 9, 11시 및 오후 3, 6시에 있다. 토요일 저녁 5시에는 노래로 저녁기도(만도)를 드린다. 이중에서 교중미사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주일 11시 감사성찬례로 전통 곡조에 맞춰 노래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교구장 주교[14]가 예배에 참석하는 경우 오전 9시 감사성찬례는 집전만, 오전 11시 감사성찬례는 집전과 설교를 모두 한다. 다만 서울교구 주교는 연중 내내 서울교구 내 교회들을 순회 방문하기 때문에 항상 서울대성당 성찬례를 집전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교가 집전하는 경우보다 주임사제가 집전하는 경우가 더 많다.[15]
성 세례자 요한 성당(소성당, 지하성당)에서도 감사성찬례를 드린다. 특히 9시 30분에는 주한 영어권 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영어 미사를 드린다. 영어 예배에 쓰이는 표준 성경은 NRSV이다. 영어 예배 형식은 교중 예배에 비해서는 간소화된 편이라 향을 피우진 않는다. 이 영어 예배의 형식은 11시 한국어 예배에 비하면 고교회파보다는 광교회파쪽에 가깝다.
성탄절, 부활주일 11시 감사성찬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대성당에서 치룬다. 이 때에는 영성체 참여자 수가 900명을 넘어서기도 한다.
매년 6월에 1번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인 경동교회와 교환예배를 한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측 사제, 부제, 복사, 성가대는 경동교회로 가서 성공회 식의 예배를 접전하고, 장로교 경동교회측 목사, 예배위원, 성가대는 서울주교좌성당으로 가서 장로교 식의 예배를 접전하는 식이다. 서울주교좌성당에 출석하는 성공회 신자 중 장로교 출신인 교인은 교환예배 때 잠시 신앙적 옛 고향에 온 기분이 들 것이다(...). 사실 그러기에는 경동교회의 주일예배 스타일도 보통 한국의 장로교회와는 많이 다르게 상당히 말씀 전례 - 성찬의 전례로 이뤄지는 전례적인 형식을 띈다. 이는 경동교회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예배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성 세례자 요한 성당(소성당, 지하성당)에서도 감사성찬례를 드린다. 특히 9시 30분에는 주한 영어권 신자들을 중심으로 한 영어 미사를 드린다. 영어 예배에 쓰이는 표준 성경은 NRSV이다. 영어 예배 형식은 교중 예배에 비해서는 간소화된 편이라 향을 피우진 않는다. 이 영어 예배의 형식은 11시 한국어 예배에 비하면 고교회파보다는 광교회파쪽에 가깝다.
성탄절, 부활주일 11시 감사성찬례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대성당에서 치룬다. 이 때에는 영성체 참여자 수가 900명을 넘어서기도 한다.
매년 6월에 1번은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인 경동교회와 교환예배를 한다.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측 사제, 부제, 복사, 성가대는 경동교회로 가서 성공회 식의 예배를 접전하고, 장로교 경동교회측 목사, 예배위원, 성가대는 서울주교좌성당으로 가서 장로교 식의 예배를 접전하는 식이다. 서울주교좌성당에 출석하는 성공회 신자 중 장로교 출신인 교인은 교환예배 때 잠시 신앙적 옛 고향에 온 기분이 들 것이다(...). 사실 그러기에는 경동교회의 주일예배 스타일도 보통 한국의 장로교회와는 많이 다르게 상당히 말씀 전례 - 성찬의 전례로 이뤄지는 전례적인 형식을 띈다. 이는 경동교회가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예배 전통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경동교회에서 드리는 성공회 감사성찬례
| 서울주교좌성당에서 드리는 경동교회 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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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신자 영접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제작한 새신자 영접 관련 영상
주일 오전 11시 감사성찬례에서는 새신자 영접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대성당에는 새신자를 위한 자리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도우미로 사역하는 신자들(주로 중년층 신자)이 옆에서 멘토링해준다. 영성체하는 방법[16]과 십자성호 긋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면 알려준다. 또한 새신자를 위한 인쇄물이 비치되어 있어서, 성공회 전례에 익숙하지 않은 새신자들이 감사성찬례를 제대로 따라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그러므로 성공회에 입교 혹은 체험할 생각이 있다면, 가급적이면 주일 오전 11시 감사성찬례에 참석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감사성찬례가 끝난 후, 성당 건물 2층 오르간 오른편 방에서 새신자/타교파 신자[17]를 위한 안내 및 신앙상담이 열리며, 반대편 방에서는 오후 12시 30분부터 전례담당신부의 주관으로 성공회 신앙생활에 대한 '즉문즉답'이 약 30분 정도 진행된다.
장로회, 감리회, 천주교 등 타 교파에서 세례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타교파 영접식이 약 3개월에 1번씩[18]있다. 새신자 등록을 하면 바로 영접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10주 동안 신앙교육을 받은 뒤, 7주 이상 출석하고 교육을 받은 타교파 신자에게 담당 신부가 연락하여 타교파 영접식을 할 지 안 할지 물어본다. 이 때 영접식에 참여하겠다고 하는 신자들만 타교파 영접식에 참여해 교적을 둔다. 이것은 신자 개인의 신앙생활을 틀에 맞춰 강요하지 않는 성공회 특유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다. 현재 개신교 혹은 천주교 신자(해당 종파의 나이롱 신자, 냉담자 포함)로서 성공회 교인으로 등록하고 싶으면 참조하자.
5. 부속 건물
- 카페 그레이스
성당 주차장 출입구(세실극장 옆 출입구)에서 성당방향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부지 한 켠에 조그맣게 있는 카페다. 겉으로만 보면 그저 흔한 카페처럼 보일 수 있으나, 2011년 3월 '사단법인 우물가'에서 설립한 카페로, 새터민 여성을 바리스타로 고용하여 새터민의 자립을 돕는 의미있는 카페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12월 24일)에는 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와 신부가 직접 일일 바리스타로 일하는 이벤트도 진행한다고 한다.본디 카페 2호점[22]도 영업하였으나 적자로 인해 문을 닫은 지가 꽤 되었고 현재 영업하는 곳은 이곳 한 곳이라고 한다.
6. 신자 구역
서울주교좌성당에 출석하는 신자들의 거주지의 대부분이 아래 목록에 나와있는 곳이다. 하나 같이 다 서울 도심 통근권이다 굵은 글씨 처리한 지역은 해당 성공회 지역교회 또한 존재하는 곳.
- 제1지역: 종로구, 중구, 서대문구
- 제2지역: 은평구 (은평1, 2: 2개 구역)
- 제3지역: 용산구, 마포구
- 제4지역: 성북구 (성북1, 2: 2개 구역), 노원구·도봉구
- 제5지역: 성동구·광진구, 중랑구, 동대문구
- 제6지역: 강서구, 양천구 (양천1, 2, 3: 3개 구역)
- 제7지역 (강남구): 대치동·삼성동, 도곡동, 압구정동·청담동·신사동, 역삼동·논현동, 일원동·수서동·개포동
- 제8지역 (서초구): 반포동·잠원동, 방배동, 서초동, 양재동·내곡동
- 제9지역: 송파구 (송파1, 2: 2개 구역), 구리시·남양주시, 강동구·하남시
- 제10지역: 관악구, 동작구 (동작1, 2: 2개 구역)
- 제11지역: 영등포구, 금천구, 구로구·광명시
- 제12지역 (고양시): 일산, 덕양·행신, 고양
- 제13지역: 성남 분당구
- 제14지역: 용인 수지구
- 특수 지역: 인천·부천, 김포, 산본·의왕, 안양, 의정부, 파주
7.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8. 여담
9. 관련 문서
[1] 주교좌성당의 관할사제는 해당 교구 교구장이 겸임한다. 단, 교구장 주교의 주교좌성당 관할사제 업무는 주임사제가 대리한다.[2] 제17 대 성공회 한국관구 관구장 주교[3] 주교좌성당의 관할사제는 해당 교구 교구장이 겸임한다. 단, 교구장 주교의 주교좌성당 관할사제 업무는 주임사제가 대리한다.[4] 제17 대 성공회 한국관구 관구장 주교[5] 후술하겠지만, 74년간 지은게 아니라 중간에 좌,우측 익랑이 잘리고 신랑과 측랑이 잘린 일부만 완성을 했다가 1992년에 성전완성을 위해 증축하였다.[6] 후술하겠지만, 74년간 지은게 아니라 중간에 좌,우측 익랑이 잘리고 신랑과 측랑이 잘린 일부만 완성을 했다가 1992년에 성전완성을 위해 증축하였다.[7] 천주교 성당 중에는 서울대성당이라고 불릴 만한 성당이 명동성당이나, 천주교인들은 명동성당을 명동대성당이라고 부를지언정 서울대성당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8]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9] 조선에서 사용한 이름은 '고요한'이었다.[10] 1911년 설계도 완성부터 1922년 건축 시작까지 무려 11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대한성공회와 서울주교좌대성당 홈페이지에는 성당건축과 관련하여 별다른 소개가 없다.[11] 설계자였던 아서 딕슨이 사망하기 직전 자신의 설계도면과 유품을 도서관에 기증했는데, 그것이 우연치 않게 발견된 것이다.[12] 어머니 성당이라기 보다는 그냥 상징적인 성당이다. 한국 최초의 성공회 성당은 인천의 내동교회이다.[13] 처음엔 많이 좁진 않았지만, 성공회 빌딩도 들어서고 성당을 원설계대로 증축하면서 더 좁아졌다.[14] 2021년 현재 이경호 베드로 주교[15] 그러나 주요축일에는 주교가 대성당에서 성찬례를 집전하니 타 본당 신자들보다 대성당 신자들이 주교를 볼 기회가 많은것이 사실이다.[16] 천주교와 다르게 성공회는 타 교파의 세례를 받은 적 있다면 예비신자 신분으로도 영성체할 수 있다.[17] 의외로 다른 개신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성공회로 오는 신자들이 적지 않다.[18] 1년에 약 3~4회 진행되는데, 대개 10주 교육이 종료되는 2월~3월, 6월, 9월, 12월 중 진행된다. 단, 영접할 타교파 신자의 인원수가 적거나 교회력 또는 일정에 의해 교육 진행에 변화가 생기면 타 교파 영접식 일자가 변경된다.[19]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20] 문화재청 문화유산정보 [21] 공덕역 쪽에 있었다.[22] 공덕역 쪽에 있었다.[23] 영동고속도로 이남의 강원도 소재 교회들은 대전교구 소속이다.[24] 감실이라고도 부른다. 병환 등에 의하여 성찬례에 함께 하지 못 한 신자들을 위하여 축성된 성체를 보관해 놓는 곳이다.[25] 삼종기도 시간. 명동성당에서도 같은 시간에 종을 쳤지만, 요즘은 종소리를 명동성당 주변의 스피커로 방송한다. 이는 서울대성당과 달리 종의 균열 및 고장으로 인해 여러 차례 교체한 경력이 있어 종의 추가적인 파괴를 막기 위함이다. [26] 6월 항쟁 과정에서도 이 곳의 종소리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항쟁이 촉발됐던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 정각 이곳에서 종이 울리자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적 시위가 시작됐고 거리로 시위대가 쏟아져 나왔다.[27] 3번, 3번, 3번, 9번에 나누어 친다. [28] 예복실에 긴 밧줄이 하나 있는데 그걸 직접 잡아 당긴다. 새신자들이 새신자 프로그램을 하면서 지나갈때마다 잡아 당겨보고 싶다고 한다... [29] 감실이라고도 부른다. 병환 등에 의하여 성찬례에 함께 하지 못 한 신자들을 위하여 축성된 성체를 보관해 놓는 곳이다.[30] 삼종기도 시간. 명동성당에서도 같은 시간에 종을 쳤지만, 요즘은 종소리를 명동성당 주변의 스피커로 방송한다. 이는 서울대성당과 달리 종의 균열 및 고장으로 인해 여러 차례 교체한 경력이 있어 종의 추가적인 파괴를 막기 위함이다. [31] 6월 항쟁 과정에서도 이 곳의 종소리는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항쟁이 촉발됐던 1987년 6월 10일 오후 6시 정각 이곳에서 종이 울리자 서울시내 곳곳에서 경적 시위가 시작됐고 거리로 시위대가 쏟아져 나왔다.[32] 3번, 3번, 3번, 9번에 나누어 친다. [33] 예복실에 긴 밧줄이 하나 있는데 그걸 직접 잡아 당긴다. 새신자들이 새신자 프로그램을 하면서 지나갈때마다 잡아 당겨보고 싶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