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당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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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이름과 역사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에는 없었고 2000년대에 청계천 복원공사를 하면서 새로 지은 다리이다. 현대건설에서 시공하였으며 2005년 9월 30일 준공되었다.
이름은 종로구 숭인동에 있던 ‘비우당(庇雨堂)’이란 옛 집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세종 때 정승을 지낸 류관은 굉장히 청빈한 것으로 유명하였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방 안에서 우산을 펴고 비를 피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그의 집을 우산각이라 불렀고, 그 동네를 우산각골이라 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수광[1]이 그 뜻을 살려 우산각(雨傘閣) 자리에 작은 집을 짓고 ‘비(雨)만 피한다(庇)’는 뜻의 ‘비우당(庇雨堂)’이라 이름붙였다. 후일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청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리 이름을 따온 것이다.
이름은 종로구 숭인동에 있던 ‘비우당(庇雨堂)’이란 옛 집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세종 때 정승을 지낸 류관은 굉장히 청빈한 것으로 유명하였는데, 비가 오는 날에도 방 안에서 우산을 펴고 비를 피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에 사람들이 그의 집을 우산각이라 불렀고, 그 동네를 우산각골이라 하였다. 그리고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수광[1]이 그 뜻을 살려 우산각(雨傘閣) 자리에 작은 집을 짓고 ‘비(雨)만 피한다(庇)’는 뜻의 ‘비우당(庇雨堂)’이라 이름붙였다. 후일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청빈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리 이름을 따온 것이다.
3. 특징
비우당교 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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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교통
4.1. 지하철
4.2. 버스
- 이 곳을 참조.
5. 여담
청계천과 성북천의 합류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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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치된 청계고가도로 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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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우당교와 무학교 사이에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할 때 남긴 3개의 교각이 있다. 청계고가도로의 역사적 의미를 남기기 위해서라고.
터널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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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류관의 6대 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