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역사
기록이 없어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절 내부에 사당인 선덕묘(善德廟)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것으로 짐작된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1]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판각은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은 일본 교토 난젠지(南禪寺)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침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현재 부인사는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 터에 중창한 것이다. 이후 1986년대 연성타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문화재로는 신라 시대의 당간지주, 쌍탑(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석등(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등이 있다.
1930년대 중건된 선덕묘에서는 지금도 음력 3월 보름, 동네 사람들과 승려들이 함께 선덕제를 지낸다.
고려 현종 때부터 문종 때까지 도감(都監)[1]을 설치하고 고려 초조대장경(初彫大藏經)을 판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판각은 13세기 몽골의 침입으로 대부분 소실되었고 현존하는 1,715판은 일본 교토 난젠지(南禪寺)에 보관되어 있다. 몽골 침입 이후 중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다시 불탔다.
현재 부인사는 1930년대 초 비구니 허상득(許相得)이 원 위치에서 서북쪽으로 약 400m 거리에 있는 암자 터에 중창한 것이다. 이후 1986년대 연성타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대웅전을 신축하였다.
문화재로는 신라 시대의 당간지주, 쌍탑(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7호), 석등(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6호) 등이 있다.
1930년대 중건된 선덕묘에서는 지금도 음력 3월 보름, 동네 사람들과 승려들이 함께 선덕제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