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임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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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835년(헌종 1) 2월 14일, 한성부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명성황후와 같은 여흥 민씨로, 본래 민승세의 아들이었지만 민명세의 아들으로 입양되었다.
1874년, 과거에 급제해 성균관 대사성, 한성부우윤, 병조참판,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지냈다. 여흥 민씨 세력에 속해 있던 보수 성향 관료로 친러파에 속해 있었다. 갑신정변 이후로는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889년 독판교섭통상사무가 되어 각국과의 통상사무 처리를 맡았고, 1896년에는 아관파천을 주도했다. 1898년에는 외부대신이 되었고, 이후 독립협회의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해 만민공동회를 해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00년에는 탁지부대신, 농상공부대신, 예식원장 등에 임명되었다.
1874년, 과거에 급제해 성균관 대사성, 한성부우윤, 병조참판, 이조참판, 대사헌 등을 지냈다. 여흥 민씨 세력에 속해 있던 보수 성향 관료로 친러파에 속해 있었다. 갑신정변 이후로는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지냈다.
1889년 독판교섭통상사무가 되어 각국과의 통상사무 처리를 맡았고, 1896년에는 아관파천을 주도했다. 1898년에는 외부대신이 되었고, 이후 독립협회의 탄압을 받기도 하였다. 같은 해 만민공동회를 해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1900년에는 탁지부대신, 농상공부대신, 예식원장 등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