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상세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때, 그간 연구했던 자료를 토대로 역서(曆書)를 제작했는데 이 공로로 공민왕 11년(1362년) 밀직부사(密直副使, 정3품) 겸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 현재의 기상청장)에 등용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1]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가장 중요한 내용중 하나인 천문 계산을 맡았다. 류방택은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천문계산)에 공헌한 공로로 이성계가 개국일등공신을 주려 했지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개성(고려의 옛 수도)으로 떠나 취령산(鷲嶺山)아래 숨어서 지냈다. 그곳에서 옛 궁궐을 향해 매일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죽는 날에는 그 두 아들에게 “나는 고려 사람으로 개성에서 죽으니, 내 무덤을 봉(封)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전해진다. [2]
서산에는 류방택의 이름을 딴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이 있다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가장 중요한 내용중 하나인 천문 계산을 맡았다. 류방택은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천문계산)에 공헌한 공로로 이성계가 개국일등공신을 주려 했지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개성(고려의 옛 수도)으로 떠나 취령산(鷲嶺山)아래 숨어서 지냈다. 그곳에서 옛 궁궐을 향해 매일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죽는 날에는 그 두 아들에게 “나는 고려 사람으로 개성에서 죽으니, 내 무덤을 봉(封)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전해진다. [2]
서산에는 류방택의 이름을 딴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