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柳方澤 }}} 1320년 ~ 1402년 [목차] == 개요 == [[고려]]말, [[조선]] 초 [[천문학자]]. [[서산시|서령]]([[서산시|서산]]의 옛 명칭) 인지면 출신 [[과학자]]. 서령부원군 류성간(柳成澗)의 7대손이자, [[유백순|류백순]](柳伯濡), 류백유(柳伯濡)의 아버지. 호는 금헌(琴軒). 금헌의 금은 [[거문고]] 금(琴)자로, 실제로도 거문고를 매우 사랑하고 연주하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 상세 ==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때, 그간 연구했던 자료를 토대로 역서(曆書)를 제작했는데 이 공로로 공민왕 11년([[1362년]]) 밀직부사(密直副使, 정3품) 겸 판서운관사(判書雲觀事, 현재의 기상청장)에 등용되었으나 곧 사임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 10p, '천상열차지도와 류방택 선생', 2009, (사)금헌류방택기념사업회]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가장 중요한 내용중 하나인 천문 계산을 맡았다. 류방택은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천문계산)에 공헌한 공로로 [[이성계]]가 개국일등공신을 주려 했지만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후 [[개성특급시|개성]](고려의 옛 수도)으로 떠나 취령산(鷲嶺山)아래 숨어서 지냈다. 그곳에서 옛 궁궐을 향해 매일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죽는 날에는 그 두 아들에게 “나는 고려 사람으로 개성에서 죽으니, 내 무덤을 봉(封)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전해진다. [* 14p, 박성래, '류방택의 생애와 사상中', 천상열차지도와 류방택 선생, 2009, (사)금헌류방택기념사업회.] 서산에는 류방택의 이름을 딴 류방택천문기상과학관이 있다 [[분류:토막글/인물]][[분류:고려의 인물]][[분류:조선/인물]][[분류:1320년 출생]][[분류:1402년 사망]][[분류:천문학자]][[분류:서산 류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