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네덜란드어
| 레오폴트 필립스 카렐 앨버트 마인라트 후베르투스 마리아 미겔
(Leopold Filips Karel Albert Meinrad Hubertus Maria Miguel) |
프랑스어
| 레오폴 필리프 샤를 알베르 마인라드 위베르 마리 미쉘
(Léopold Philippe Charles Albert Meinrad Hubert Marie Michel) | |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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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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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 벨기에의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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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1926년 결혼 / 1935년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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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릴리앙 바엘 (1941년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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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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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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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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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 샤를, 마리 조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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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2. 생애
레오폴드 3세는 알베르 1세 국왕의 장남으로 출생했는데, 원래 그의 아버지 알베르 1세는 벨기에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큰아버지 레오폴드 2세가 아들이 없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3] 당시 벨기에 왕실은 살리카법이었다. 이런 과거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벨기에 왕실의 절대적 맏이계승제는 적지 않은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알베르 1세가 1934년 2월 17일에 죽자 레오폴드 3세가 즉위하였다.
1935년 8월 29일 아스트리드 왕비[4]와 단 둘이 루체른 호 근처의 좁은 길을 운전하다가 차가 전복되어 호수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결국 왕비는 이 일로 사망하였다. 1941년 9월 11일 15세 연하의 릴리앙 바엘과 재혼하였다.
태자 시절 레오폴드는 그다지 큰 문제를 저지르지 않았고, 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외모도 준수한 데다가 2남 1녀의 자녀가 있고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즉위한 지 5년 만에 발생한 초대형 전쟁이 레오폴드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고 말았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레오폴드 3세는 항복은 했지만 나중에 독일군 포로로 잡혔으며 끝까지 나치 독일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1945 년까지 즉 2차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오스트리아에 억류되어 있어 스위스로 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스위스로 간 것도 추방되어 간 것이다. 1944년 자신의 남동생 샤를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1945년부터 스위스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비록 2번째 결혼으로 인한 여론이 안 좋았다고는 하나, 왕의 귀환에 대해 투표를 했을 때 58% 의 벨기에 국민들이 왕의 귀환을 찬성했으나 벨기에의 정당들이 반대하여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진짜로 레오폴드 3세가 독일에게 항복하자마자 스위스로 도망갔다면 아무리 지지 세력이 있었어도 58%의 지지율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1951년 7월 26일, 레오폴드 3세는 장남 보두앵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983년 9월 25일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1935년 8월 29일 아스트리드 왕비[4]와 단 둘이 루체른 호 근처의 좁은 길을 운전하다가 차가 전복되어 호수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결국 왕비는 이 일로 사망하였다. 1941년 9월 11일 15세 연하의 릴리앙 바엘과 재혼하였다.
태자 시절 레오폴드는 그다지 큰 문제를 저지르지 않았고, 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외모도 준수한 데다가 2남 1녀의 자녀가 있고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즉위한 지 5년 만에 발생한 초대형 전쟁이 레오폴드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고 말았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레오폴드 3세는 항복은 했지만 나중에 독일군 포로로 잡혔으며 끝까지 나치 독일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1945 년까지 즉 2차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오스트리아에 억류되어 있어 스위스로 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스위스로 간 것도 추방되어 간 것이다. 1944년 자신의 남동생 샤를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1945년부터 스위스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비록 2번째 결혼으로 인한 여론이 안 좋았다고는 하나, 왕의 귀환에 대해 투표를 했을 때 58% 의 벨기에 국민들이 왕의 귀환을 찬성했으나 벨기에의 정당들이 반대하여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진짜로 레오폴드 3세가 독일에게 항복하자마자 스위스로 도망갔다면 아무리 지지 세력이 있었어도 58%의 지지율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1951년 7월 26일, 레오폴드 3세는 장남 보두앵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983년 9월 25일 브뤼셀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