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회원수정)] [include(틀:역대 벨기에 국왕)] ||<-3><table align=center><tablewidth=500> [[파일:external/media-2.web.britannica.com/133130-004-682FCD33.jpg|width=100%]] || ||<|2><width=15%> '''이름''' ||<width=23%> 네덜란드어 ||레오폴트 필립스 카렐 앨버트 마인라트 후베르투스 마리아 미겔[br](Leopold Filips Karel Albert Meinrad Hubertus Maria Miguel)|| || 프랑스어 ||레오폴 필리프 샤를 알베르 마인라드 위베르 마리 미쉘[br](Léopold Philippe Charles Albert Meinrad Hubert Marie Michel)|| || '''출생''' ||||[[1901년]] [[11월 3일]][br][[벨기에]] [[브뤼셀]]|| || '''사망''' ||||[[1983년]] [[9월 25일]] (83세)[br][[벨기에]] [[브뤼셀]] 월루에-생-랑베르|| ||<|2> '''재위''' ||||<#E7E7E7>[[벨기에]]의 국왕|| ||||[[1934년]] [[2월 17일]] ~ [[1951년]] [[7월 16일]]|| ||<|2> '''배우자''' ||||[[아스트리드 소피아 로비사 티라|스웨덴의 아스트리드]] ,,(1926년 결혼 / 1935년 사망),,|| ||||메리 릴리앙 바엘 ,,(1941년 결혼),,|| || '''자녀''' ||||[[조제핀샤를로트]], [[보두앵(벨기에)|보두앵]], [[알베르 2세(벨기에)|알베르 2세]], 알렉상드르, 마리 크리스틴, 마리 에스메랄다|| || '''아버지''' ||||[[알베르 1세]]|| || '''어머니'''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 '''형제''' ||||샤를, 마리 조제[* [[이탈리아 왕국]] 마지막 국왕인 [[움베르토 2세]]의 부인]|| == 소개 == 레오폴드 3세는 [[벨기에]]의 국왕이다. 현재 벨기에의 국왕 [[필리프(벨기에)|필리프]]의 할아버지이자 [[룩셈부르크]]의 대공 [[앙리(룩셈부르크)|앙리]]의 외할아버지이다. == 생애 == 레오폴드 3세는 [[알베르 1세]] 국왕의 장남으로 출생했는데, 원래 그의 아버지 [[알베르 1세]]는 [[벨기에]] 왕위와는 거리가 멀었으나, 큰아버지 [[레오폴드 2세]]가 아들이 없어서 왕위를 물려받았다.[* 아들이 있긴 했으나 폐렴으로 요절했다.] 당시 벨기에 왕실은 [[살리카법]]이었다. 이런 과거가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벨기에 왕실의 절대적 맏이계승제는 적지 않은 변화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알베르 1세]]가 [[1934년]] [[2월 17일]]에 죽자 레오폴드 3세가 즉위하였다. 1935년 8월 29일 아스트리드 왕비[* [[오스카르 2세]]와 [[프레데리크 8세]]의 손녀이다.]와 단 둘이 루체른 호 근처의 좁은 길을 운전하다가 차가 전복되어 호수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결국 왕비는 이 일로 사망하였다. 1941년 9월 11일 15세 연하의 릴리앙 바엘과 재혼하였다. 태자 시절 레오폴드는 그다지 큰 문제를 저지르지 않았고, 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외모도 준수한 데다가 2남 1녀의 자녀가 있고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모습이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듯''' 했다. '''그러나, 즉위한 지 5년 만에 발생한 [[2차대전|초대형 전쟁]]이 레오폴드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고 말았다.''' [[1940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였다. 레오폴드 3세는 항복은 했지만 나중에 독일군 포로로 잡혔으며 끝까지 나치 독일에 협조하지 않았으며, 1945 년까지 즉 2차세계대전이 종전될 때까지 오스트리아에 억류되어 있어 스위스로 갈 수도 없었다. 그리고 스위스로 간 것도 추방되어 간 것이다. 1944년 자신의 남동생 샤를을 섭정으로 임명하고 1945년부터 스위스에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비록 2번째 결혼으로 인한 여론이 안 좋았다고는 하나, 왕의 귀환에 대해 투표를 했을 때 58% 의 벨기에 국민들이 왕의 귀환을 찬성했으나 벨기에의 정당들이 반대하여 결국 이루어지지 못했다. 만약 진짜로 레오폴드 3세가 독일에게 항복하자마자 스위스로 도망갔다면 아무리 지지 세력이 있었어도 58%의 지지율을 얻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결국 [[1951년]] [[7월 26일]], 레오폴드 3세는 장남 [[보두앵(벨기에)|보두앵]]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983년]] [[9월 25일]]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분류:벨기에 국왕]][[분류:브라반트 공작]][[분류:벨기에 가문]][[분류:1901년 출생]][[분류:1983년 사망]][[분류:퇴위한 군주]][[분류:라컨 성당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