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dball Era
1. 개요
2. 이유
2.1. 야구공의 문제
초기 야구공은 제약이 거의 없었다. 극초기 야구공은 대부분 심으로 납을 사용하였으며, 그 주변을 실로 감고 가죽으로 둘렀다. 납 대신에 납으로 만든 총알을 쓰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돌조각을 심으로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심은 고무로 변했다. 하지만 이 공들은 대단히 가볍고 부드러웠다. 1840년대의 공들은 너무 가볍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당시 규칙은 주자의 몸에 공을 던져서 맞히면 아웃이었다.[3]당연히 그런 공들로는 타구든 송구든 비거리가 나올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그 어떤 외야수도 공을 던져서 내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1849년, 유격수라는 완전히 새로운 포지션이 탄생하게 된다. 심지어 투수가 직접 자기가 던질 공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로 공의 모양과 크기도 랜덤이었다. 이는 1860년대에 이르러서야 규격화 되고 무거워지게 된다. 이 때문에 등장한 것이 태그 아웃이다. 직접 주자를 맞힐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1876년에야 현재와 같은 무게와 크기로 규정된다.
하지만 여전히 공인구라는 개념은 없었다. 규정이 된 것은 크기와 모양, 무게였지 반발계수는 기준에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구단이나 투수들은 야구공의 반발계수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심에 고무를 많이 넣고 실을 단단히 감으면 반발력이 상승했고, 심에 고무를 조금 덜 넣고, 실도 느슨히 감으면 반발력은 뚝 떨어졌다. 구단은 투수전을 하고 싶으면 반발력이 약한 공을 사용했고, 타격이 좀 더 자신있으면 반발력이 강한 공을 사용했다. 이 때, 반발력이 약한 공을 부르는 표현이 바로 데드볼이었다.
1910년 고무심의 가운데에 코르크를 넣은 공이 등장한다. 이 공으로 반발력이 커지고 장타가 늘어났다. 하지만 공격력이 너무 늘었다는 불평으로 실을 느슨하게 감도록 강제하면서 공의 반발력은 다시 내려갔고, 일시적으로 증가했던 홈런과 장타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심은 고무로 변했다. 하지만 이 공들은 대단히 가볍고 부드러웠다. 1840년대의 공들은 너무 가볍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당시 규칙은 주자의 몸에 공을 던져서 맞히면 아웃이었다.[3]당연히 그런 공들로는 타구든 송구든 비거리가 나올 수가 없었다. 당시에는 그 어떤 외야수도 공을 던져서 내야로 보낼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1849년, 유격수라는 완전히 새로운 포지션이 탄생하게 된다. 심지어 투수가 직접 자기가 던질 공을 만들기도 했을 정도로 공의 모양과 크기도 랜덤이었다. 이는 1860년대에 이르러서야 규격화 되고 무거워지게 된다. 이 때문에 등장한 것이 태그 아웃이다. 직접 주자를 맞힐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리고 1876년에야 현재와 같은 무게와 크기로 규정된다.
하지만 여전히 공인구라는 개념은 없었다. 규정이 된 것은 크기와 모양, 무게였지 반발계수는 기준에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구단이나 투수들은 야구공의 반발계수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었다. 심에 고무를 많이 넣고 실을 단단히 감으면 반발력이 상승했고, 심에 고무를 조금 덜 넣고, 실도 느슨히 감으면 반발력은 뚝 떨어졌다. 구단은 투수전을 하고 싶으면 반발력이 약한 공을 사용했고, 타격이 좀 더 자신있으면 반발력이 강한 공을 사용했다. 이 때, 반발력이 약한 공을 부르는 표현이 바로 데드볼이었다.
1910년 고무심의 가운데에 코르크를 넣은 공이 등장한다. 이 공으로 반발력이 커지고 장타가 늘어났다. 하지만 공격력이 너무 늘었다는 불평으로 실을 느슨하게 감도록 강제하면서 공의 반발력은 다시 내려갔고, 일시적으로 증가했던 홈런과 장타는 예전으로 돌아갔다.
2.2. 야구 규칙의 문제
사실 규칙 면에서 보았을 때, 1900년대 이전의 야구는 현대 야구와 직접 비교하는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사실상 다른 스포츠다. 스트라이크가 몇개가 되어야 아웃이 되는가라거나, 사구에 필요한 공의 개수라거나, 스트라이크의 개념에서 차이가 엄청나게 크다. 단적으로 극초기에는 타자가 치기 편한 위치를 정해주면 투수가 거기로 공을 언더핸드로[4] 던져 줘야 했다. 사실상 아리랑볼이 강제된 격. 이 때 타자가 헛스윙을 해야 스트라이크였으니, 실질적으로는 홈런더비의 형태로 야구를 했다고 보면 된다. 그 외에도 규칙에 따라 타고투저가 변한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예를 들어서 투수와 타자와의 거리가 50피트에서 60피트 6인치로 늘어나면서 타율이 급상승하고 이전의 투수들 상당수가 퇴물이 되었다.
2.2.1. 파울의 처리
2.2.2. 야구공의 교체 규칙
일단 1800년대의 규칙 변화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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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서 어지간하면 야구공을 교체하지 말고 그냥 쓰라는 것이다.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돈 문제이다. 당시 야구공은 3~5달러 정도였는데, 이것은 2010년대 기준으로는 80~90달러 정도의 가치이다. 구단주들은 어지간하면 새 공을 사는데 돈을 쓰고 싶어하지 않았고, 이걸 규칙에 넣은 것이다.
이 규칙 때문에 공이 망가지지 않은 이상 계속 사용했으니 공은 더러워졌고, 부드러워졌다. 때문에 반발력은 내려갔고, 더러워진 공은 타자도 야수도 보기 어려웠다. 심지어 경기중에 공을 교체하게 되면 투수는 일부러 내야수들에게 넘기고, 내야수들은 씹는 담배가 포함된 침을 뱉어둔 글러브로 그 공을 돌리면서 공을 더럽혔다. 그래서 방금 교체된 공도 검은 색으로 변해서 사용되었다. 이 경우는 자동으로 아래의 스핏볼 효과가 있었다.
2.2.3. 스핏볼의 허용
스핏볼은 간단히 말해서 야구공을 변형시켜서 하는 부정투구이다. 사실 스핏볼이라고 하지만 종류도 다양하고 발전상도 다양하다.
- 스핏볼(spit ball)
- 스커프볼(scuffball)
- 샤인볼(shine ball)
- 침 등의 물기를 바르지 않고 표면을 매끈하게 만들면 된다. 주로 글러브나 유니폼에 문질렀는데, 파우더나 부드러운 흙 등도 사용되었다. 공에 광을 낸다고 해서 샤인볼인데, 물기 없는 스핏볼이라고 보면 된다.
2.2.4. 퀵피치의 허용
2.2.5. 타자들의 문제
간단히 말해서 타자들이 장타를 포기했다. 모두가 방망이를 짧게 잡고 맞히는 것에 집중했으며, 그 다음은 발로 승부했다. 이 때문에 이 시기를 대표하는 타자가 바로 타이 콥인 것이다.
실제로 라이브볼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타자들의 홈런수는 극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베이브 루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당시 타자들은 공의 반발력이 늘어난 다음에도 그만큼 홈런수를 향상시키지는 못했다.
실제로 라이브볼 시대에 접어들어서도 타자들의 홈런수는 극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베이브 루스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당시 타자들은 공의 반발력이 늘어난 다음에도 그만큼 홈런수를 향상시키지는 못했다.
루스(좌)와 콥(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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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서 콥과 루스의 배트 쥐는 법이 루스 이전과 이후의 차이이다. 루스는 새끼 손가락으로 놉을 감쌀 정도로 배트를 길게 잡고 있고, 콥은 그보다 훨씬 짧게 잡고 있다.
3. 결과
4. 종식
5. 기타
5.1. 대혹사의 시대
스포츠 과학이 없고 기본적인 인권 개념이 훨씬 낙후된 시대였기에[20]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혹사가 상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초창기 에이스들은 시즌 전경기를 (대략 70여 경기 정도) 선발로 출장하는게 기본이었고 무조건 완투했다(...). 지금보다 훨씬 팔에 무리가 덜 가는 구종 때문에 당시의 혹사가 과소평가를 받는 경우가 있지만, 엄연히 야구는 선수들에겐 직업이었고 있는 힘을 다해 던졌다. 아프면 그냥 참고 하는 것이 상식이었고, 특히 그 시절에는 감독한테 항의할 수도 없으니 통증은 어떻게든 참아가면서[21]말 그대로 팔이 고장날 때까지 던지고
이런 학대 수준의 투수 관리는 메이저 리그의 수익이 올라가고 선수들이 고액 연봉자가 되면서 해결된다. 예전처럼 소모품처럼 쓰고 버리기엔 선수들의 몸값이 너무 세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스포츠과학이 발달하면서 "그냥 쟤 팔이 약해서 고장난 것임"이란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변명은 더이상 통할 수가 없게 되었다.
역대 한시즌 최다 이닝 상위 20위[23]를 보면 투수들이 모두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퍼지거나 재활을 반복하다가 은퇴한 것을 볼 수 있다.링크
[1] 후에 타자로 전향해서 레전드가 된다.[2] 후에 타자로 전향해서 레전드가 된다.[3] 부상 위험을 생각해서 안전한 공을 만들었다. 공이 잘 날아가지 않는것도 이익인데 수비 입장에서는 현대와 달리 주자를 피해 송구해야하는 수고도 없이 막 던져도 되니 무척 편했다.[4] 당시에는 오버스로도 금지였다.[5] 땀이나 머릿기름, 바셀린, 파라핀 등 발라서 마찰력이 떨어지는 것이면 뭐든 상관없다.[6] 스트릭렛은 스핏볼을 전파하는데 제법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7] 140년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방어율 1위가 바로 이 사람이다. 침묻혀서 1등?[8] 땀이나 머릿기름, 바셀린, 파라핀 등 발라서 마찰력이 떨어지는 것이면 뭐든 상관없다.[9] 스트릭렛은 스핏볼을 전파하는데 제법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140년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방어율 1위가 바로 이 사람이다. 침묻혀서 1등?[11] 땀이나 머릿기름, 바셀린, 파라핀 등 발라서 마찰력이 떨어지는 것이면 뭐든 상관없다.[12] 스트릭렛은 스핏볼을 전파하는데 제법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13] 140년 메이저리그 역대 통산 방어율 1위가 바로 이 사람이다. 침묻혀서 1등?[14] 블랙삭스 스캔들로 영구제명된 투수중 한명이다.[15] 블랙삭스 스캔들로 영구제명된 투수중 한명이다.[16] 블랙삭스 스캔들로 영구제명된 투수중 한명이다.[17] 스핏볼만은, 오직 당시 사용하고 있던 투수 17명에게만 은퇴할 때까지 사용할 수 있게 허가되었다. 마지막 합법적 스핏볼 사용자는 빌리 그라임스로 1934년 41세로 은퇴했다.[18] Kashatus, William C. (2002). Diamonds in the Coalfields: 21 Remarkable Baseball Players, Managers, and Umpires from Northeast Pennsylvania. Jefferson, North Carolina: McFarland & Company. ISBN 978-0-7864-1176-4.[19] Kashatus, William C. (2002). Diamonds in the Coalfields: 21 Remarkable Baseball Players, Managers, and Umpires from Northeast Pennsylvania. Jefferson, North Carolina: McFarland & Company. ISBN 978-0-7864-1176-4.[20] 당장 여성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투표권이 없었고 노동조건은 저임금과 착취가 일상이었던 19세기 후반보다는 나아졌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좋다고 하기에는 무리였던 시절이었다.[21] 제대로 된 진통제가 있을리 만무했으므로, 술과 마약(!) 등 온갖 약물에 찌들어가며 고통을 잊어야 했다.[22] 그리고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 승리가 찰스 레드본인데 한 해에 60승(...), 678.2이닝을 던져 한 해 최다 승 1위, 최다 이닝 2위를 기록했다. 결국 10시즌만에 은퇴. 다만 베테랑 위원회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첫 번째 선수가 되었다.[23] 1위 680 이닝 , 2위 678.2 이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