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 PD, 現 MBC 부사장
2. 개그우먼
3. 닥종이 인형 제작자
통칭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 아이를 많이 낳기도 했지만[1] 닥종이 인형을 많이 만들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또한 본인이 1992년에 펴낸 자전적 에세이의 제목도 "아이를 잘 만드는 여자"인데, 미술에 크게 관심 없는 이들에게는 닥종이 인형 제작자보다는 이 책의 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참고로 이 책 이후로 계속해서 독일 생활과 자식들을 소재로 하는 여러 에세이를 썼다.
1944년 해주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첫 남편과 사별 후 1981년에 열네 살 연하의 독일 청년과 결혼해 독일 뮌헨으로 이주, 그곳에서 닥종이 조형작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2] 김영희는 그 당시 어떤 작가도 다루지 않았던 재료와 형태, 표현기법으로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지금까지 70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 퍼포먼스를 가져 국내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잘 알려진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1978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 1990년, 1992년, 1994년, 1998년, 2002년, 2003년에 귀국 초대전을 가져 국내 관객들에게도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2008년, 5년 만에 고국에서 전시를 열게 된 김영희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종이 조형 작품과 사진, 조각 작품 70여 점을 선보였다.
1944년 해주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 대학원에서 회화와 조각을 전공했다. 첫 남편과 사별 후 1981년에 열네 살 연하의 독일 청년과 결혼해 독일 뮌헨으로 이주, 그곳에서 닥종이 조형작가로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2] 김영희는 그 당시 어떤 작가도 다루지 않았던 재료와 형태, 표현기법으로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독일뿐 아니라 네덜란드, 프랑스, 스웨덴, 스페인, 스위스 등에서 지금까지 70여 차례의 개인전과 그룹전, 퍼포먼스를 가져 국내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잘 알려진 예술가로 인정받고 있다.
1978년을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꾸준히 개인전을 열어 1990년, 1992년, 1994년, 1998년, 2002년, 2003년에 귀국 초대전을 가져 국내 관객들에게도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 2008년, 5년 만에 고국에서 전시를 열게 된 김영희는 한층 성숙한 모습으로 서정적이고 회화적인 종이 조형 작품과 사진, 조각 작품 70여 점을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