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김성한 구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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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전개과정3. 사건 이후

1. 개요[편집]

2. 전개과정[편집]

당시 KIA 타이거즈는 4연패를 당한 상황이었고, 이에 1군과 2군의 선수 전원에 대한 특별훈련이 실시되었는데, 이 때 2군 소속의 포수 김지영이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던 것을 김성한 감독이 발견한 것.

이에 김성한 감독은 "똑바로 하라"라고 외치며 방망이로 머리를 쳤고,[1][2] 김지영은 헬멧을 쓰고 있었으나 충격흡수 장치가 없어 머리 윗부분이 깨지며 피를 흘렸고 곧바로 구단 지정병원인 한국병원에서 6바늘을 꿰맸다.[3]

전치 2주 진단을 받고 통원치료를 했던 김지영은 사고 발생 한달이 지난 이달 17일 시야 흐림과 목 통증 등 후유증으로 선수생활을 할 수 없다며 2억원의 합의금을 요구했으나 김성한 감독과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김성한 감독은 파문이 확산되자 구단 인터넷 홈페이지에 "모든 것은 저의 잘못과 불찰"이라면서도 "선수들의 헬멧을 치는 것은 체벌이라기 보다는 지도자가 독려하는 애정의 한 표현이고 훈련이나 경기에 집중하라는 의미"라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기아 선수들도 "선수의 헬멧을 때린 것은 훈련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행위로 김 감독의 행위는 고의성이 담긴 것이 아니다"는 요지의 글을 구단 홈페이지에 게재했다.[4]

이에 분노한 김지영의 아내가 인터넷에 사건 관련 내용을 폭로하게 되나, KIA 타이거즈 측은 보상급으로 1년치 연봉인 2000만원을 제시한 뒤 방출을 할 의사를 밝힌다. 이런 대응 방식에 분노한 네티즌들은 스포츠 신문과 KBO에 이 일에 대해 다룰 것을 요구하게 되고,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KIA 타이거즈는 김지영의 설득에 나선다. 하지만 김성한 감독은 사과를 끝까지 거부했고 KIA 타이거즈도 준플레이오프 시즌이 시작되자마자, 김지영에게 보상금을 지불한 후 방출을 선언하였다.

이후 김성한 감독은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성적 부진을 이유로 감독직에서 끌려내려왔고 구타문제로 인해 한동안 야구계의 활동을 접게 된다.

3. 사건 이후[편집]

이 사건이 있고 나서 1년 후인 2003년 7월에 두산에서 KIA로 트레이드된 최용호는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잠적 소동을 일으켰다.

이호성 살인 사건 이후 이러한 체육계의 악습이 원인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호성 또한 해태-KIA에 속해있었던 전직 선수다.

김성한은 2009년 천하무적 야구단의 감독 겸 조언자로 복귀했다.

그러나 프로야구로의 복귀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았다. 2012년 10월 한화 이글스의 수석코치로 야구계에 복귀했다.

여담이지만 대표적인 스파르타 성향이었던 김응룡 당시 삼성 라이온즈 고문이자 전 해태 타이거즈 감독이 2011년에 한 인터뷰에서 "나는 누구처럼 선수 때려서 해골 깨지게 하는 짓까지는 안했다."라는 말로 이 사건을 은근슬쩍 꼬집었다.[5]

2018년 김성한은 진천선수촌장으로 내정되었으나 철회되었는데, 프로 선수 출신이 아마추어 선수를 관장하는 촌장이 되는 것에 대한 불만족도 있었지만 이 사건 으로 인해 철회됐다는 것이 사실상 정설이다.[6]

그리고 감독이 선수를 구타하는 악습은 18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개선되지 않아 결국 2020년 6월 26일 여자 트라이애슬론최숙현 선수가 극단적 선택으로 2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1] 김지영 측은 방망이로 3회 연속 내리쳤다고 주장했다.[2] 이유가 어찌되었든, 몇대를 내리쳤든 방망이로 다른 부위도 아닌 머리를 때렸다는 점에서 김성한은 빼도박도 못하는 중범죄자다. 그리고 그런 중범죄자를 감싸주는 기아 선수단도 실로 답이 없다.[3] 중상이라고 표현을 한 곳도 있지만, 병원 진단은 전치 2주다.[4] 그만큼 기아가 해태 시절의 빡센 군기가 그 당시까지도 강하게 남아있었다는 빼도박도 못할 증거다. 1994년 당시 OB 베어스 감독이던 윤동균의 체벌 위협 때 주축 선수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생각해 보자. 실제로 김성한 구타 사건 이후 1년 이내에 기아로 트레이드된 선수들은 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팀을 패배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거나, 잠적소동을 일으켰다.[5] 그러나 김응룡도 카메라가 버젓이 찍고 있는데 한대화를 발로 걷어차는 등 숨기지도 않고 폭력을 적극적으로 행사했던 사람이다. 프로데뷔 이후 김응룡 밑에서 선수-코치생활까지 했던 김성한이 누구를 보고 배웠겠는지 생각해보면....다만 김성한의 시대는 더이상 사람들이 '교육'이라는 명목하의 폭력을 용납하던 시대가 아니었을 뿐.[6] 더군다나 김성한이 진천선수촌장으로 내정된 당시는 2019년 체육계 성추문 폭로사건으로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제대로 뒤집어졌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