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공주박물관 國立公州博物館 | Gongju National Museum | |
종류 | |
주소 | |
개관 | |
연락처 | 041-850-6300 |
1. 개요[편집]
2. 연혁[편집]
공주 지역 시민들이 백제 문화재를 보존하기 위해 만든 공주 고적 보존회가 주축이 되어, 일제 강점기인 1940년에 공주에 있는 충청도 관찰사의 행정청인 선화당을 전시관으로 활용하여 '공주박물관'이란 이름으로 개관하였다. 그러다가 1946년에 '국립 박물관' 공주분관으로 바뀌었고,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으로 개칭되었다. 무령왕릉을 발굴할 때 유물 이송과 보존 과정에서도 발굴조사단과 지역 주민과의 마찰이 일어났다. 당시 공주박물관의 시설이 미흡해서 서울로 이송하여 보존을 해야 했는데 그러자 그 소식을 들은 공주읍의 주민들은 유물을 서울에 있는 박물관으로 가져가서 다시 공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우려해, 몰려와서 단 한 점도 서울로 가져가게 할 수 없다고 농성을 벌였다. 이에 발굴단은 "유물이 삭아 없어지면 당신들이 책임 질 거냐"고 응수해서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1]
이후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 신축개관이 되면서 무령왕릉 유물이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75년엔 이름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2004년에는 현재의 공주시 웅진동 건물로 확장 이전하여 재개관하였다. 새로 지어져서 시설은 좋지만 시내에서의 접근성이 안 좋은 편이다. 공주시 중동에 있던 옛 부지는 보수 후 충청남도역사박물관으로 개장했다.
이후 1973년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 신축개관이 되면서 무령왕릉 유물이 공주박물관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그 후 1975년엔 이름도 국립공주박물관으로 승격되었다.
2004년에는 현재의 공주시 웅진동 건물로 확장 이전하여 재개관하였다. 새로 지어져서 시설은 좋지만 시내에서의 접근성이 안 좋은 편이다. 공주시 중동에 있던 옛 부지는 보수 후 충청남도역사박물관으로 개장했다.
3. 역대 관장[편집]
- 유시중 (1946~1961)
- 박일훈 (1961~1962)
- 김영배 (1962~1966/1969~1979)
- 이영락 (1966~1969)
- 홍빈기 (1979~1982)
- 박영복 (1982~1987)
- 권승환 (1987~1988)
- 이원복 (1988~1989)
- 최종규 (1989~1993)
- 서오선 (1993~1997)
- 김영원 (1997~1999)
- 곽동석 (1999~2003)
- 손명조 (2003~2005)
- 신창수 (2005~2007)
- 박방룡 (2007~2009)
- 유병하 (2009~2011)
- 김승희 (2011~2012)
- 정성희 (2012~2014)
- 김종만 (2014~2016)
- 김규동 (2017~ )
4. 전시물[편집]
5. 가이드[편집]
스마트투어가이드 앱을 이용하면 스마트폰으로 전시 안내를 들을 수 있다.
6. 나무위키에 항목이 생성된 소장유물[편집]
7. 교통[편집]
7.1. 시외/고속버스를 통한 접근[편집]
7.2. 공주역을 통한 접근[편집]
공주역 앞에 정차하는 공주 방면 200번대의 버스를 이용하여 공주시청 앞에서 내려서 125번을 타고 문예회관 앞에서 하차하거나 108번[2]을 타고 공주박물관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혹은 산성동(구 터미널) 정류장에서 내려 101번을 타고 문예회관 앞에서 하차해도 된다.
7.3. 조치원역을 통한 접근[편집]
7.4. 대전역을 통한 접근[편집]
대전 도시철도 1호선, 103번, 107번을 이용하여 현충원역까지 간 후, 현충원역 3번 출구 부근의 정류장에서 30분 간격으로 다니는 300번을 타고 옥룡동주민센터 정류장에서 내린 후, 101번을 타고 문예회관 앞에서 내린 후 박물관까지 걸어서 가면 된다.
7.5. 오송역을 통한 접근[편집]
7.6. 청주국제공항을 통한 접근[편집]
8. 사건사고[편집]
- 2003년 5월 웅진동 신축 이전을 1년 앞두고 국보를 포함한 문화재 4점을 도난당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공주박물관 도난사건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