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상나라와 주나라 때 난하 유역을 중심으로 요서 지역에 있던 제후국으로 탕왕이 봉한 나라이다. 국가의 성씨는 자(子)성 묵태(墨胎)씨, 작위는 후작이다. 초창기에 수도는 하북성 노룡 근처였으나, 영지로 옮기게 되며 상나라가 멸망한 후 흔히 수양산에서 생을 마감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왕족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춘추시대 때는 서쪽으로는 연(燕)나라, 남으로는 제(齊)나라와 인접해 있었고 연나라의 압박을 받으며 약해지다가 서기전 664년 제환공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춘추시대 때는 서쪽으로는 연(燕)나라, 남으로는 제(齊)나라와 인접해 있었고 연나라의 압박을 받으며 약해지다가 서기전 664년 제환공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2. 역대 군주
고죽국의 계보는 대부분 분명치 않으며 7~9대 군주만 전하고 있다. 일본어 위키백과나 바이두백과 등지에는 1~6대 군주의 왕호도 전하나, 근거는 부족하다.
- 조묵(祖墨)
- 조은(祖𡊷[6])
- 조상(祖商)
- 조익(祖熤)
- 조병(祖丙)
- 부병(父丙)
- 부정(父丁) 묵태죽유(墨胎竹猷)
- 아미(亞微) 묵태초(墨胎初) - 부정의 아들, 자는 자조(子朝). 윤, 풍, 치 세 명의 아들을 뒀다.
- 아빙(亞憑) 묵태풍(墨胎馮) - 아미의 차남. 형과 동생이 모두 군주 자리를 거절하면서 그가 즉위했다.
(이후 군주 불명)
3. 백이와 숙제
해당 문서 참조.
4. 기타
토탈 워: 삼국에서는 공손도 세력이 칭왕하면 고죽국으로 국명이 바뀌게 된다.
[1] 보통 4군으로 인식하나, 일부 문헌에서는 3군으로도 표시함.[2] 보통 4군으로 인식하나, 일부 문헌에서는 3군으로도 표시함.[3] 보통 4군으로 인식하나, 일부 문헌에서는 3군으로도 표시함.[4] 이곳에서 1973년 발굴된 상(商)시대의 청동기에 '고죽(孤竹)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고죽국의 위치를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5] 지경 은(垠)의 이체자라고 한다. 㓞 밑에 부수인 土가 있으며 이렇게 생겼다.[6] 지경 은(垠)의 이체자라고 한다. 㓞 밑에 부수인 土가 있으며 이렇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