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중국의 역사/260BC)] {{{+1 孤竹 }}} (? ~ 서기전 664) [목차] == 개요 == [[상나라]]와 [[주나라]] 때 난하 유역을 중심으로 요서 지역에 있던 제후국으로 [[탕왕]]이 봉한 나라이다. 국가의 성씨는 자(子)성 묵태(墨胎)씨, 작위는 [[후작]]이다. 초창기에 수도는 하북성 노룡 근처였으나, 영지로 옮기게 되며 상나라가 멸망한 후 흔히 수양산에서 생을 마감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가 왕족인 국가로 알려져 있다. [[춘추시대]] 때는 서쪽으로는 [[연(춘추전국시대)|연(燕)나라]], 남으로는 [[제(춘추전국시대)|제(齊)나라]]와 인접해 있었고 연나라의 압박을 받으며 약해지다가 서기전 664년 [[제환공]]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 > 唐裵矩傳云 高麗本孤竹國[今海州] 周以封箕子爲朝鮮 漢分置三郡 謂玄菟樂浪帶方 > 당의 배구전에는 [[고구려|고려(고구려)]]는 본래 고죽국[지금 해주]인데 주가 [[기자(중국)|기자]]를 봉하여 [[기자조선|조선]]이라 하였고, [[한사군|한은 3군(三郡)]][* 보통 4군으로 인식하나, 일부 문헌에서는 3군으로도 표시함.]을 나누어 설치하여 현도・낙랑・대방[북대방]이라 하였으며, 통전에도 이 설과 같다. >- >『[[삼국유사]]』 권1 기이1 고조선조 [[랴오닝성]] 카줘현(喀左縣)의 구산(孤山)[* 이곳에서 1973년 발굴된 [[상나라|상]](商)시대의 청동기에 '고죽(孤竹)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고죽국의 위치를 확인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었다.] 에서 기후(箕侯)라는 글자가 새겨진 [[청동기]]가 발굴되었기 때문에 [[기자조선]]의 실체와 위치를 둘러싸고 학계의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 역대 군주 == 고죽국의 계보는 대부분 분명치 않으며 7~9대 군주만 전하고 있다. 일본어 위키백과나 바이두백과 등지에는 1~6대 군주의 왕호도 전하나, 근거는 부족하다. 1. 조묵(祖墨) 1. 조은(祖𡊷[* 지경 은(垠)의 이체자라고 한다. 㓞 밑에 부수인 土가 있으며 [[http://www.unicode.org/cgi-bin/refglyph?24-212B7|이렇게 생겼다.]]]) 1. 조상(祖商) 1. 조익(祖熤) 1. 조병(祖丙) 1. 부병(父丙) 1. 부정(父丁) 묵태죽유(墨胎竹猷) 1. 아미(亞微) 묵태초(墨胎初) - 부정의 아들, [[자(이름)|자]]는 자조(子朝). 윤, 풍, 치 세 명의 아들을 뒀다. 1. 아빙(亞憑) 묵태풍(墨胎馮) - 아미의 차남. [[백이와 숙제|형과 동생]]이 모두 군주 자리를 거절하면서 그가 즉위했다. (이후 군주 불명) == [[백이와 숙제]] == 해당 문서 참조. == 기타 == [[토탈 워: 삼국]]에서는 공손도 세력이 칭왕하면 고죽국으로 국명이 바뀌게 된다. [각주] [[분류:상나라의 제후국]] [[분류:주나라의 제후국]] [[분류:후국]] [[분류:기원전 7세기 멸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