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흥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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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역사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흥복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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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1868년(고종 5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처음 세워졌다. 완전히 새 건물을 지은 건 아니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창의궁의 함일재를 옮겨 지었다고 전한다. 경복궁 중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강녕전, 교태전 등 내전의 주요 건물들이 2차례에 걸쳐 불타 없어지자(...) 임금이 사용하면서 경연, 신하들과 외국 공사를 만나는 등 공식적인 업무와 행사를 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후 효명세자의 부인이자 고종의 양어머니 신정왕후 조씨가 머물렀고 1890년(고종 27년) 4월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헐려 사라졌다. 1917년 화재로 사라진 창덕궁 내전을 복구하는데에 자재로 쓰였다고 하나 옮긴 이후 어떤 건물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흥복전 자리엔 일본식 정원이 들어섰다.
흥복전 공개를 다룬 YTN 뉴스 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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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특징
- 정면 9칸, 측면 4칸의 총 36칸으로 정면 기준 양 끝 칸은 누 마루가 1칸 씩[4]구성되어있으며 누 마루 밑의 기둥 사이마다 나무 판문으로 막아놓았다. 서쪽의 누 마루 이름은 만의루(萬宜樓)이다.# 누 마루 안쪽에 온돌방 2칸을 두었고[5] 양 온돌방 사이에 대청 3칸[6]을 두었다. 정면의 가장자리 칸은 툇마루이나 뒷면의 가장자리는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단, 대청과 연결된 뒷면의 칸은 툇마루이다. 그리고 건물 동북쪽에 4칸짜리 온돌방을 두어 ‘」’ 자 형태를 띄게 하였다. 덧대인 온돌방의 동쪽, 북쪽 면에는 가퇴가 설치되어 있다.
- 바로 남쪽에 아미산이 있기 때문에 남쪽 행각은 없으며 흥복전 영역의 정문 수인문(壽仁門)도 남쪽이 아닌 서쪽에 세웠다. 대신 행각을 동, 서, 북쪽으로 갖추었으며 흥복전 본전과 각 행각 사이마다 작은 담과 문이 설치되어 영역을 분리하였다. 이 중 북쪽 행각은 현재 복원이 안 되어있다. 서쪽의 행각은 남북으로 길고, 지금 존재하지 않는 북쪽의 행각은 옛 그림이나 배치도를 보면, 동서로 길었으며 4겹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행각들은 궁인들이 머무는 처소와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 등으로 구성되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