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경복궁)] {{{+1 景福宮 興福殿}}} [목차] ||<table width=662>[[파일:경복궁 흥복전.jpg|width=100%]]|| || 흥복전 || == 개요 == [[경복궁]]의 대비전(大妃殿) 중 하나로 [[경복궁 교태전|교태전]]의 후원인 [[경복궁 교태전#s-5|아미산]]의 북쪽에 있다. == 역사 == ||<table width=662>[[파일:조선고적도보 흥복전.png|width=100%]]|| ||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흥복전 || [[경복궁]] 창건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1868년([[고종(대한제국)|고종]] 5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 처음 세워졌다. 완전히 새 건물을 지은 건 아니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았던 [[창의궁]]의 함일재를 옮겨 지었다고 전한다. 경복궁 중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경복궁 강녕전|강녕전]], [[경복궁 교태전|교태전]] 등 내전의 주요 건물들이 2차례에 걸쳐 불타 없어지자(...) 임금이 사용하면서 [[경연]], 신하들과 외국 공사를 만나는 등 공식적인 업무와 행사를 하는 공간이 되었다. 이후 [[효명세자]]의 부인이자 고종의 양어머니 [[신정왕후 조씨]]가 머물렀고 1890년(고종 27년) 4월 이 곳에서 승하하였다.[[http://sillok.history.go.kr/id/kza_12704017_006|#]] 그러다 [[일제강점기]]에 헐려 사라졌다. 1917년 화재로 사라진 [[창덕궁]] 내전을 복구하는데에 자재로 쓰였다고 하나 옮긴 이후 어떤 건물이 되었는지는 모른다. 흥복전 자리엔 일본식 정원이 들어섰다. || [youtube(KQy25AkQcFQ)] || || 흥복전 공개를 다룬 [[YTN]] 뉴스 클립 || [[문화재청]]은 <[[경복궁]] 복원 2차 계획 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9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총 174억원을 들여 약 3년 3개월에 걸쳐 복원 공사를 진행하였고 2019년 7월에 공개하였다. 정식 개방은 2020년 예정.[[http://m.newspim.com/news/view/20190710000922|#]] [[단청]]은 아직 칠하지 않았는데, 계획대로라면 2020년대 초중반에 모두 마칠 예정이었지만 거의 2021년이 다 되도록 칠해지지 않고 있다. == 특징 == * [[기단]]은 4벌대의 장대석으로 쌓았고, 역시 4벌짜리인 계단을 정면에 3세트, 뒷면에도 3개를 놓았는데 뒷면 계단의 둘은 기단의 측면에 놓여있다. [[초석|주춧돌]]과 기둥은 사각으로 되어 있다.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에 [[공포]]는 초익공 양식이다. 용마루와 추녀마루, 내림마루는 양성바름을 하고 취두와 [[용두]], 그리고 4개의 [[잡상]]과 토수를 놓았다. * 정면 9칸, 측면 4칸의 총 36칸으로 정면 기준 양 끝 칸은 [[누각|누]] [[마루]]가 1칸 씩[* 정면, 측면을 합친 실제 칸 수는 총 4칸,]구성되어있으며 누 마루 밑의 기둥 사이마다 나무 판문으로 막아놓았다. 서쪽의 누 마루 이름은 만의루(萬宜樓)이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흥복전(興福殿)|#]] 누 마루 안쪽에 [[온돌|온돌방]] 2칸을 두었고[* 이론 상 4칸이나 남북축으로 방을 트여 실제로 2칸이다.] 양 온돌방 사이에 [[대청]] 3칸[* 이론 상 6칸이나 공간을 전부 트여 1칸으로 사용하게 하였다.]을 두었다. 정면의 가장자리 칸은 [[마루|툇마루]]이나 뒷면의 가장자리는 온돌방으로 되어있다. 단, 대청과 연결된 뒷면의 칸은 툇마루이다. 그리고 건물 동북쪽에 4칸짜리 온돌방을 두어 ‘」’ 자 형태를 띄게 하였다. 덧대인 온돌방의 동쪽, 북쪽 면에는 가퇴가 설치되어 있다. * 바로 남쪽에 [[경복궁 교태전#s-5|아미산]]이 있기 때문에 남쪽 행각은 없으며 흥복전 영역의 정문 수인문(壽仁門)도 남쪽이 아닌 서쪽에 세웠다. 대신 행각을 동, 서, 북쪽으로 갖추었으며 흥복전 본전과 각 행각 사이마다 작은 담과 문이 설치되어 영역을 분리하였다. 이 중 북쪽 행각은 현재 복원이 안 되어있다. 서쪽의 행각은 남북으로 길고, 지금 존재하지 않는 북쪽의 행각은 옛 그림이나 배치도를 보면, 동서로 길었으며 4겹을 이루었다고 한다. 이 행각들은 궁인들이 머무는 처소와 음식을 만드는 소주방 등으로 구성되었었다. * 궁궐 복원 역사상 처음으로 현대식 화장실과 [[빔 프로젝터]], 전기 시설을 설치하여 화제가 되었다. 단순히 보존만 하는 게 아닌, 회의, 교육, 공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 위함이라고. 사실 예부터 보존 된 건물을 건드린 것도 아니니 큰 문제는 없고, 박제된 궁이 아닌 시민들의 살아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전기 시설 등 [[화재]] 위험 요소와 관련하여 보다 철저한 관리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다.[[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7102059005&code=960201|#]] == 여담 == * 1872년(고종 9년)에 여기서 [[철종(조선)|철종]]의 딸 [[영혜옹주]]의 남편을 고르는 간택을 행했다. 이 때 뽑힌 사람이 바로 [[박영효]]. [[갑신정변]]의 주역 그 박영효 맞다.[[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흥복전(興福殿)|#]] * 복원공사 도중 전통 건축에 쓸 수 없는 [[시멘트]](...)를 썼다가 적발되어 재공사한 적이 있었다. [[문화재청]]은 당초 이 사실을 모르다가 공사에 참여한 한 기능인이 폭로해 알게 되었다고.[[http://news.kbs.co.kr/news/view.do?ncd=4111393&ref=D|#]]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경복궁, version=942, paragraph=4.3.2)] [[분류:경복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