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2. 재위 기간
2.1. 진(晉)나라 내전에 개입
환왕 2년(기원전 718년) 봄, 환왕은 곡옥장백의 뇌물을 먹고, 정나라, 형나라와 함께 진의 도성인 익성을 포위했다. 환왕은 대부 윤씨와 무씨를 보내 곡옥장백을 돕게 했다. 그런데 주나라 천자는 봉건 질서를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진이 아닌 곡옥을 돕는 것이 이상하다. [1] 그러자 당시 진(晉)나라 군주인 악후는 그 힘에 밀려 수읍으로 달아났다. 같은 해 여름에 악후는 그 땅에서 죽었다. 그리고 곡옥장백은 그 소식을 듣고 기가 살았는지 진나라에 맹공을 가했다. 당시 곡옥장백은 환왕을 배반하였다. 결국 환왕은 그 해 가을 그 배신을 응징하기 위해 진나라와 손잡고 곡옥장백을 쳤다. 그리하여 곡옥장백은 패하여 곡옥 땅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주 환왕은 악후의 아들인 애후를 세웠다.
2.2. 정 장공과 사이가 갈라지다.
환왕 3년(기원전 717년), 정장공이 주나라에 입조하였다. 그런데, 정 장공이 주나라의 기장을 수확한 것에 분노해 그에게 짐짓 무례하게 대했다. 그러자 주공 흑견이 간했다.
"전하. 정나라의 백작 정백우가 유왕을 지키다가 죽었으니 그에게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환왕은 그 말을 듣고 참기로 했다.
환왕 4년(기원전 716년) 겨울, 노나라에 범백을 보냈다. 범백이 복귀할 때 융인들이 초구를 막아 융인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환왕 5년(기원전 715년) 봄, 정 장공은 환왕이 무례하게 군 것에 앙심을 품고 노은공과 짜고 노나라의 탕목읍인 팽읍과 정나라의 허전과 바꾸었는데, 이 땅은 모두 주나라 천자가 태산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곳이다. 그 해 여름에 괵공 기보를 경사에 임명했다.
"전하. 정나라의 백작 정백우가 유왕을 지키다가 죽었으니 그에게 예의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일단 환왕은 그 말을 듣고 참기로 했다.
환왕 4년(기원전 716년) 겨울, 노나라에 범백을 보냈다. 범백이 복귀할 때 융인들이 초구를 막아 융인들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환왕 5년(기원전 715년) 봄, 정 장공은 환왕이 무례하게 군 것에 앙심을 품고 노은공과 짜고 노나라의 탕목읍인 팽읍과 정나라의 허전과 바꾸었는데, 이 땅은 모두 주나라 천자가 태산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는 곳이다. 그 해 여름에 괵공 기보를 경사에 임명했다.
2.3. 노나라와의 관계
환왕 6년(기원전 714년) 봄, 환왕은 남계를 노나라에 보냈다.
환왕 12년(기원전 708년) 봄, 환왕은 재관인 거백 규를 노나라에 보냈다. 같은 해 겨울에는 환왕은 진(秦)나라와 함께 예나라를 포위해 예나라 군주인 예백만을 사로잡았다.
환왕 12년(기원전 708년) 봄, 환왕은 재관인 거백 규를 노나라에 보냈다. 같은 해 겨울에는 환왕은 진(秦)나라와 함께 예나라를 포위해 예나라 군주인 예백만을 사로잡았다.
2.4. 정나라와 싸우다
환왕 13년(기원전 707년), 정 장공은 경사의 신분으로 환왕에게 입조할 때마다 전권을 휘둘렀다.[2] 당연히 환왕은 그런 대우가 달가울리 없었다. 이에 환왕은 정 장공의 권력을 거둬갔다. 그러자 정 장공은 다시는 입조하지 않았다. 같은 해 가을 환왕은 병사를 거느리고 정나라를 정벌했다. 환왕은 중군, 괵공 임보는 우군장, 채나라와 위나라는 그를 돕게 했으며, 좌군은 주공 흑견, 그리고 진(陳)나라는 좌군에 속했다.
한편 정나라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제중(祭仲), 원번(原繁), 고거미(高渠彌) 등을 거느리고 맞서 싸우니 이 전투를 수갈 전투라 한다. 그러자 주 환왕은 패하였고, 정 장공의 부하인 축첨은 환왕의 어깨에 화살을 맞추었다. 결국 환왕은 퇴각하였다. 정 장공은 환왕과 싸우기는 했지만 천자를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축첨을 해고하고 축첨은 그 충격으로 죽었다.[3]
한편 정나라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았는데, 제중(祭仲), 원번(原繁), 고거미(高渠彌) 등을 거느리고 맞서 싸우니 이 전투를 수갈 전투라 한다. 그러자 주 환왕은 패하였고, 정 장공의 부하인 축첨은 환왕의 어깨에 화살을 맞추었다. 결국 환왕은 퇴각하였다. 정 장공은 환왕과 싸우기는 했지만 천자를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아 축첨을 해고하고 축첨은 그 충격으로 죽었다.[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