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산타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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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산타마리아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호세 산타마리아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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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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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축구감독
이름
호세 산타마리아
José Santamaría
본명
호세 에밀리오 산타마리아 이글레시아스
José Emilio Santamaría Iglesias
출생
국적
신체
180cm
직업
축구선수(센터백 / 은퇴)
축구감독
소속
선수
감독
국가대표
20경기 0골(우루과이 / 1952~1957)
16경기 0골(스페인 / 1957~1962)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클럽 나시오날2.1.2. 레알 마드리드 CF
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커리어
4.1. 대회 기록4.2. 개인 수상

1. 개요[편집]

우루과이 국적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선수 시절 1950년대 유럽 무대를 호령하며 저승사자 군단으로 불렸던 레알 마드리드 CF의 주축 수비수였으며,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페렌츠 푸스카스, 레이몽 코파, 프란시스코 헨토와 함께 팀의 유러피언 컵 5연패에 기여했다. 또한 저승사자 군단의 주축들이 은퇴를 한 이후에도 헨토와 함께 1966년 유러피언 컵 우승을 이끌었다.

또한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FIFA 월드컵 4강과 코파아메리카 우승을 이뤄내는 등 우루과이와 레알 마드리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RCD 에스파뇰과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2.1.1. 클럽 나시오날[편집]

1948년 우루과이의 클럽 나시오날에서 데뷔한 그는,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5차례 우승하는 맹활약을 하였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4강에 든 것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의 오퍼를 받아 1957년부터 합류하게 된다.

2.1.2. 레알 마드리드 CF[편집]

파일:santamaria.jpg
저승 사자 군단의 방패

1957년 레알 마드리드에 합류한 산타마리아는, 디 스테파노, 푸스카스, 레몽 코파, 헨토 등으로 이루어진 저승 사자 군단의 주전 수비수로 자리매김했다. 그가 합류하기 전 이미 레알 마드리드는 유로피언 컵 2회 우승을 기록하고 있었고, 산타마리아가 합류한 이후로 3차례의 우승을 추가하면서, 역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진 유일한 유로피언 컵 5회 연속 우승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후 1959/60 시즌 유로피언 컵 우승 이후로 팀의 주축 선수들이 하나 둘 씩 팀을 떠나갔으나, 산타마리아는 헨토와 함께 팀의 주축 선수로 남았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는 아만시오 아마로 중심의 팀으로 개편되었고, 아만시오가 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산타마리아와 헨토는 팀의 정신적 지주로서 남아있었고, 결국 1965/66 시즌 유로피언 컵 우승을 이루게 된다. 레알 마드리드로서는 6번째 우승 트로피였고, 산타마리아 개인으로서는 4번째 우승이었다. 1966년에 유로피언 컵 우승을 이뤄낸 이후, 산타마리아는 현역에서 은퇴하게 된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1952년부터 우루과이 축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우루과이는 1950년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강호였고, 산타마리아는 이러한 축구 강국의 주축 수비수로 자리매김할만큼, 이 시기부터 이미 우루과이의 전국구 스타 수비수에 위치하여 있었다. 이후 그의 첫 월드컵이었던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4강까지 진출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4강에서는 푸스카스가 이끄는 ' 매직 마자르 ' 헝가리에게 패배하면서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산타마리아는 대회 올스타 팀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었다. 그리고 1956년에는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이후 1957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였고, 스페인의 귀화 요청을 받으면서, 귀화를 한 1957년부터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에 차출되었다. 하지만 스페인 국적으로는 메이저 대회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했고, 1962년 칠레 월드컵이 끝난 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한다.

3. 플레이 스타일[편집]

정확한 태클 능력과 빈틈 없는 대인 방어 능력을 소유한 선수로, 팬들에게 이라는 애칭으로 불리었다. 특별히 발 기술이 좋은 선수였다는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스위퍼보다는 스토퍼에 가까운 유형이었다고 판단된다.

4. 커리어[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 클럽 나시오날(1948-49~1956-57): 5회 우승
    • 우루과이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5): 1949-50, 1951-52, 1954-55~1956-57

4.2. 개인 수상[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