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선수/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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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는 다른 스포츠들과는 다르게 이적시장이 매우 활발하다 보니 2000년대 들어서면서 프랜차이즈 선수가 생기기 힘들어졌고, 특히 원 클럽 플레이어는 더 보기 힘들어졌다.
범례
원 클럽 플레이어[1]으로 은퇴한 선수(★)

1. K리그[편집]

1.1. 강원 FC[편집]

1.2. 광주 FC[편집]

1.3. 대구 FC[편집]

1.4. 대전 하나 시티즌[편집]

1.5. 부산 아이파크[편집]

1.6. FC 서울[편집]

1.7. 성남 FC[편집]

1.8. 수원 삼성 블루윙즈[편집]

1.9. 울산 현대[편집]

1.10. 인천 유나이티드[편집]

1.11. 전남 드래곤즈[편집]

1.12. 전북 현대 모터스[편집]

1.13. 제주 유나이티드[편집]

1.14. 포항 스틸러스[편집]

2. 해외[편집]


[1] 한국인 선수의 경우 상무나 경찰청 경력이 있어도 인정된다.[2] 강원 FC 창단이 늦은만큼 실제 팀에 기여했다기보다 마케팅으로 내세우는 측면이 강하다. 사실 이을용은 김기동, 윤정환 등과 함께 부천 SK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보아야 옳다. 다만 강원 출신으로 창단때 부터 대표 선수로 부각되었다.[3] 2022년까지 계약기간이었으나 2020시즌 도중 사망.[4] 짧은 기간동안 뛰었지만 FC서울에 오기 위해 소송과 임의탈퇴까지 불사한 선수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5] 라이벌팀 수원으로 이적, 그 이후에 2020시즌 대구FC소속으로 서울상대로는 득점 후에도 친정팀에 대한 예의를 표했으나.. 수원상대로는 득점 후 아데바요르를 연상시키는 열정적인 무릎 슬라이딩 셀레브레이션을 선보였다[6] 2012년 리그 우승, 2013년 아챔 준우승 당시 캡틴 일명 '상암의 왕'[7] 김두현은 성남 FC의 다른 프랜차이즈 선수들에 비해서 활동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아보이지만, 성남에서 보여준 3년 연속 베스트 일레븐으로 뽑혔을 정도로 뛰어난 공로와 주장으로서 보여준 위치를 생각해보면 존재감이 매우 큰 선수로 유명했기 때문에 성남 팬들이라면 누구나 인정해주는 정신적 지주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대접을 받는다. 실제로, 성남 FC의 팬들이 유니폼 마킹을 가장 많이 하는 레전드 선수로도 유명했다.[8] FC서울의 이영진과 동명이인.[9] 성남시 출신의 로컬 보이 선수다. 지금은 비록 J리그를 넘어 리그 1로 이적한 상황이지만, 국내 복귀를 하면 성남으로 꼭 돌아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10] 구단과의 마찰로 라이벌팀인 포항으로 이적했지만, 그래도 예외적으로 울산의 레전드로 대우받는 선수.[11] 2009.1~2011.9 상주상무 군입대를 제외하면 울산에서만 뛴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2016년 11월 2일 제주 유나이티드전 후반 42분 교체출전으로 프로통산 200경기 출전기록을 달성하며 은퇴[12] 울산 현대 산하 U-15팀 현대중학교 졸업 이후 바로 울산 현대와 프로 계약을 맺고 2006년 드래프트에서 우선지명으로 입단했다. K리그에서는 오직 울산에서만 선수로 뛰었지만, 2019시즌 최종전 동해안 더비에서 패배 및 준우승에 결정타가 된 스로인 실책을 범하고는 팀에 가만히 있었으면 어련히 사람들이 용서해줬을텐데 반 시즌만에 일본으로 도망간 모양이 되어서...[13] 2000년 J리그에 1년 임대[14] K리그에서는 오직 울산에서만 선수로 뛰었다.[15] 광양제철중과 광양제철고를 거친 성골 전남 유스 출신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전남 드래곤즈와 프로계약을 맺었다. 2020년 현재 다시 전남 드래곤즈로 돌아왔다.[16] 2006 ACL을 이른바 캐리하며 화려하게 등장하였으나 정작 팀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시점에는 잦은 부상을 당하였으며 전북팬들에게는 아픈 손가락으로 남아있다.[17] 등번호 20번 영구결번[18] 05-06 시즌은 상무에서 군 복무[19] 유스는 1998(포철동초)[20] 유스는 1985(포철중)[21] 유스는 1994(포철서초)/2008~2010 전반기까지 전북 임대/2015~2016 시즌 9월까지 군 복무[22] 유스는 1993(포철동초)[23] 포철동초 4학년 때부터 축구를 시작.[24] 현 유스총괄이사. 포항에서 뛴 경기 수는 많지 않지만, 선수로서도 실력과는 별개로 감독으로서도 포항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25] 일단 포항에서는 프랜차이즈 대우지만 미묘하다. K리그에서 뛴 기간은 고작 6년이고, 선수 커리어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다. 더구나 FC 코리아 소속이나 다름없을 만큼 잦은 대표팀 차출 때문에 실제 리그 출전 날짜를 따지자면 더욱 줄어든다. 그나마도 2002년까지는 프랜차이즈 대우를 받았는데 LA 갤럭시로 이적할 때 팀에 대립각을 세웠고 포항 팬들도 분노했을 정도로 안 좋게 헤어져서 이 사실을 모르는 신규 팬들을 제외하면 그냥 반금지어다. 까놓고 말하자면 국가대표로 이뤄놓은 업적 때문에 버리기 아까워서 프랜차이즈 대접을 받는 것일 뿐 그게 아니었으면 이 항목이 아니라 금지어 항목에 올라갈만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감독을 맡으면서 엔트으리 논란, K리거 홀대와 폄하 발언으로 K리그 전체에서 금지어가 되는 바람에 여기서도 파이게 생겼다.[26] 2010시즌과 2011시즌 전반기는 공익 근무로 인해 양주시민축구단으로 임대[27] 유스는 2001년(포철공고 2학년 전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