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이름[1] | 폴가르 줄러 (Polgár Gyula)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키슈텔렉 |
포지션 | 레프트 하프백, 풀백 |
신체조건 | 178cm / 72kg |
등번호 | -[2] |
소속팀 | |
국가대표 | 26경기 / 2골 (1932-1942) |
감독 | APIA 라이히하르트 (1957-1960) 멜버른 헬라스(1961-1962) APIA 라이히하르트 (1964) 세인트 조지 부다페스트 (1968) |
1. 생애[3][편집]
1.1. 선수 생활[편집]
1.1.1. 클럽[편집]
폴가르는 고향팀을 연고로 하는 키슈텔레키 TI에서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1930년 MTK 부다페스트에서 데뷔한 이후 2년간의 부더이 11 생활을 거쳐 자신의 클럽 생활 중 전성기를 보내게 될 페렌츠바로시 TC에 입단하게 되었다.
페렌츠바로시에서 폴가르는 기존 멤버들인 샤로시 죄르지, 톨디 게저, 터카츠 요제프 등과 호흡을 맞추며 4회의 헝가리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 외에도 많은 우승컵을 차지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다.
11년간의 페렌츠바로시의 생활을 마친 폴가르는 MTK 부다페스트로 다시 이적해 당시 어린 공격수였던 히데쿠티 난도르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1946년에는 이탈리아의 마젠타로 이적하였고 1948년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페렌츠바로시에서 폴가르는 기존 멤버들인 샤로시 죄르지, 톨디 게저, 터카츠 요제프 등과 호흡을 맞추며 4회의 헝가리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그 외에도 많은 우승컵을 차지하며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보냈다.
11년간의 페렌츠바로시의 생활을 마친 폴가르는 MTK 부다페스트로 다시 이적해 당시 어린 공격수였던 히데쿠티 난도르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1946년에는 이탈리아의 마젠타로 이적하였고 1948년 선수 은퇴를 선언하였다.
1.1.2. 국가대표팀[편집]
폴가르는 1932년 9월, 체코슬로바키아를 상대로 국가대표팀 데뷔전을 치렀고 데뷔골의 희생양은 오스트리아였다. 프라터슈타디온에서 열린 이 시합에서 헝가리는 폴가르의 골에 힘입어 2대2 무승부를 기록하였다.
폴가르는 헝가리 대표팀으로 2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아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 출전하였다. 코라니어 라요슈 대신 풀백으로 출전한 폴가르는 비로 샨도르와 호흡을 맞췄지만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에 2대4로 패배했다.
폴가르의 마지막 A매치는 1942년 11월의 스위스전이었고 헝가리는 홈에서 2대0으로 승리하였다.
폴가르는 헝가리 대표팀으로 2번의 월드컵에 참가했는데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아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고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결승전에 출전하였다. 코라니어 라요슈 대신 풀백으로 출전한 폴가르는 비로 샨도르와 호흡을 맞췄지만 디펜딩 챔피언 이탈리아에 2대4로 패배했다.
폴가르의 마지막 A매치는 1942년 11월의 스위스전이었고 헝가리는 홈에서 2대0으로 승리하였다.
1.2. 이후[편집]
2.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정확한 패스를 뿌릴 수 있는 수비수. 프리키커로 종종 나설 정도로 킥력도 좋았다.
3. 수상[편집]
3.1. 클럽[편집]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우승 4회: 1933–34, 1937–38, 1939–40, 1940–41(페렌츠바로시 TC)
- 마자르 쿠파 우승 4회: 1934–35, 1941–42, 1942–43, 1943–44(페렌츠바로시 TC)
- 미트로파 컵 우승 1회: 1937(페렌츠바로시 TC)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준우승 6회: 1930–31(MTK 부다페스트), 1934–35, 1936–37, 1938–39, 1943-44, 1945(페렌츠바로시 TC)
- 넴제티 바이녹사그 I 준우승 4회: 1934–35, 1936–37, 1938–39, 1943–44(페렌츠바로시 TC)
- 미트로파 컵 준우승 3회: 1935, 1938, 1939(페렌츠바로시 TC)
3.2. 국가대표[편집]
3.3. 개인[편집]
- 헝가리 올해의 선수 1회: 1934(페렌츠바로시 T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