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난도르 히데구티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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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축구감독 | ||
이름 | ||
출생 | ||
사망 | ||
국적 | ||
신체 | 키 179cm | |
직업 | ||
소속 | 선수 | 에레크트로모시 FC(1942-1945) MTK 부다페스트 FC (1945-1958) |
감독 | MTK 헝가리아 FC(1959-1960) ACF 피오렌티나(1960-1962) AC 만토바(1962-1963) 죄르 ETO FC(1963-1965) FC 터터바녀(1966) MTK 헝가리아 FC(1967-1968) 부다페스트 스파르타쿠스(1968-1971) 스탈 제슈프(1972) 에그리 도사(1973) 알 아흘리 클럽(1973-1980) 알 아흘리 클럽(1983-1985) | |
국가대표 | 69경기 39골(헝가리 /1945~1958) | |
1. 개요[편집]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1942년에 에레크트로모시 FC에 데뷔해서 1945년까지 53경기 27골을 넣었다. 1945년 MTK 헝가리아 FC에 이적해서 1949년까지 110경기 73골을 기록했고 1949년~1950년에는 부다페스티 텍스타일스에서는 30경기 23골, 1950년~1952년 사이에는 부다페스티 바슈티아 SE에서 51경기 49골, 1952년~1956년에는 뵈뢰슈 로보고 SE에서 92경기 65골을 넣었다.[4] 1956년에 예전 이름으로 되돌아온 MTK 헝가리아 FC에서 1958년까지 31경기 16골을 넣고 은퇴했다.
2.2. 국가대표 경력[편집]
1945년에 대표팀에 데뷔한 히데쿠티는 1952 헬싱키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모습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1953년에는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잉글랜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축구 종주국이자 세계최강이라 자부하던 잉글랜드를 6:3으로 박살냈다.[5] 이후 1954 스위스 월드컵에 출전한 히데구티는 페렌츠 푸스카스 - 산도르 코츠시스 - 요세프 보직 - 졸탄 치보르 등 막강한 전력을 자랑하던 매직 마자르의 일원으로서 최정민 - 주영광 - 홍덕영이 버티는 월드컵에 첫 출전한 대한민국을 9:0, 서독을 상대로 2골을 넣으며 8:3 승리를 이끌었다. 8강 브라질과의 시합에선 선제골을 넣었으며 폭력과 레드카드과 난무하는 접전 끝에 브라질을 격파하고 4강에 진출한 헝가리는 1950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인 디펜딩 챔피언 우루과이를 상대로 1골을 넣으며 연장전 끝에 4:2 승리를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 상대는 서독이었고, 졸탄 치보르와 페렌츠 푸스카스의 골로 2:0으로 리드했으나 헬무트 란의 활약으로 3:2 역전패, 베른의 기적의 희생양이 되어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1958 스웨덴 월드컵에도 출전 했으나 헝가리는 1라운드에서 탈락하고 만다.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히데그쿠티는 헝가리, 이탈리아, 폴란드 및 이집트의 클럽에서 감독 생활을 했다. 1961년, 그는 ACF 피오렌티나의 감독이 되어 초대 UEFA 컵 위너스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인도했고, 팀은 결승전에서 레인저스를 4-1로 물리쳤다. 이와 더불어 1963년에는 죄르 ETO FC를 맡아 헝가리 리그에서 우승시켰고, 1965년에는 팀을 유로피언컵 준결승전까지 진출시켰으나, 후에 준우승한 SL 벤피카에게 패하고 말았다.
4. 수상 경력[편집]
선수
헝가리
* 올림픽 우승
** 1952
* 중앙유럽 챔피언
** 1953
* 월드컵
** 준우승: 1954
페렌츠바로시 TC
* 헝가리 챔피언: 3
** 1951, 1953, 1958
* 헝가리컵: 1
** 1952
* 미트로파컵: 1
** 1955
감독
ACF 피오렌티나
* UEFA 컵 위너스컵: 1
** 1961
기외리 에토 FC
* 헝가리 챔피언: 1
** 1963
* 유러피언컵
** 준결승: 1965 1
헝가리
* 올림픽 우승
** 1952
* 중앙유럽 챔피언
** 1953
* 월드컵
** 준우승: 1954
페렌츠바로시 TC
* 헝가리 챔피언: 3
** 1951, 1953, 1958
* 헝가리컵: 1
** 1952
* 미트로파컵: 1
** 1955
감독
ACF 피오렌티나
* UEFA 컵 위너스컵: 1
** 1961
기외리 에토 FC
* 헝가리 챔피언: 1
** 1963
* 유러피언컵
** 준결승: 1965 1
[1] 헝가리에서는 성씨가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온다.[2] 폴스 나인[3] 1930년대의 마티아스 신델라가 최초의 폴스 나인 유형의 중앙 공격수로 평가받는데, 진짜로 등번호 9번을 달고 뛴 폴스 나인 유형의 중앙 공격수는 난도르 히데구티가 최초이다. 여담으로 월드컵에 등번호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54년이다.[4] 팀 이름이 계속 바뀌지만 모두 같은 팀이다.[5] 히데구티는 넓은 범위에서 뛰면서 다른 공격수 4명에게 공을 배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는 잉글랜드 수비진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었다. 이 방법은 혁신적인 전술로, 당시 축구계에 큰 혁명을 일으켰다. 이 전술은 현재 잘 알려져 있는 세컨드 스트라이커인 프란체스코 토티와 웨인 루니같은 선수들이 오늘날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