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다하르 (아프가니스탄) | ||
1. 도시[편집]
1.1. 지리[편집]
1.2. 역사[편집]
1.2.1. 상고대[편집]
1.2.2. 헬레니즘 시대[편집]
1.2.3. 이슬람 정복과 저항[편집]
1.2.4. 몽골의 침입과 재건[편집]
1.2.5. 무굴 vs 사파비[편집]
16세기 초에는 카불의 바부르가 칸다하르를 점령하였고, 1521년에는 시크교의 창시자 구루 나나크가 힌두스턴에서 메카로 가는 여정에서 도시를 지나기도 하였다. 무굴 제국에게 인도로의 관문인 칸다하르는 중요한 요충지였다.
바부르의 아들 후마윤은 수르 왕조에게 북 인도를 뺏기고 이란의 사파비 왕조로 피신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후마윤의 선물로 칸다하르는 사파비 조의 동쪽 변경 도시거 되었다. 다만 1590년에 그의 아들 악바르 대제의 협상으로 칸다하르는 다시 무굴 제국령이 되었다.
악바르 대제가 죽자 사파비 군대는 칸다하르를 포위하였으나(1605 - 1606년) 격퇴당하였다. 그러나 1649 - 1653년에 걸친 무굴 - 사파비 전쟁에서 도시는 다시 이란의 영토가 되었다. 부하라 칸국의 카불 공격이 결정적.
바부르의 아들 후마윤은 수르 왕조에게 북 인도를 뺏기고 이란의 사파비 왕조로 피신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후마윤의 선물로 칸다하르는 사파비 조의 동쪽 변경 도시거 되었다. 다만 1590년에 그의 아들 악바르 대제의 협상으로 칸다하르는 다시 무굴 제국령이 되었다.
악바르 대제가 죽자 사파비 군대는 칸다하르를 포위하였으나(1605 - 1606년) 격퇴당하였다. 그러나 1649 - 1653년에 걸친 무굴 - 사파비 전쟁에서 도시는 다시 이란의 영토가 되었다. 부하라 칸국의 카불 공격이 결정적.
1.2.6. 아프가니스탄의 중심지[편집]
도시는 1709년에 파슈툰 - 길자이 족의 반란과 함께 호타키 왕조의 수도가 되었으나 1738년에 나디르 샤에게 함락되어 구도심이 크게 파괴되었다. 나디르 샤는 자신이 파괴한 구도심 옆에 자신의 이름을 딴 나데라바드라는 신 시가지를 조성하였다.
1747년에 나디르 샤가 죽은 후 호타키 왕조의 왕자였던 아흐마드 샤가 현 아프가니스탄의 전신인 두라니 왕조를 개창, 칸다하르를 수도로 삼았다.
비록 1776년에 두라니 조의 수도가 카불로 옮겨졌지만, 칸다하르는 여전히 아프간 지역의 중요한 도시였다. 두라니 왕조의 멸망 후 벌어진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영국 군대의 침입을 받았다.
1747년에 나디르 샤가 죽은 후 호타키 왕조의 왕자였던 아흐마드 샤가 현 아프가니스탄의 전신인 두라니 왕조를 개창, 칸다하르를 수도로 삼았다.
비록 1776년에 두라니 조의 수도가 카불로 옮겨졌지만, 칸다하르는 여전히 아프간 지역의 중요한 도시였다. 두라니 왕조의 멸망 후 벌어진 영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영국 군대의 침입을 받았다.
1.2.7. 현재[편집]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의 주요 기지가 위치하였다. 그래서인지 칸다하르 학살 사건이란 참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이 사건의 여파와 기나긴 전쟁에 도저히 이길 기미가 없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느낀 미군이 철수하여 상당수 기지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주둔하고 있다. 다만 이 철수의 반작용으로 안 그래도 개떡 같던 치안이 더 개떡 같아져, 현재 아프간 제1의 막장이라는 헬만드 주 급의 지역이 되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