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주세페 카반나의 수상 이력 | ||
[ 펼치기 · 접기 ]
|
이름 | 주세페 카반나 (Giuseppe Cavanna) |
생년월일 | |
사망년월일 | |
국적 | |
출신지 | 베르첼리 |
포지션 | |
신체조건 | 171cm / 76kg |
등번호 | -[1] |
소속팀 | US 프로 베르첼리 칼초 (1925~1929) SSC 나폴리 (1929~1936) 베네벤토 칼초 (1936~1937) US 프로 베르첼리 칼초 (1937~1939) 아베차노 (1945~1946) |
국가대표 | 0경기 / 0골 (1934) |
감독 | 아벨리노(1936) 베네벤토 칼초 (1936~1937) 아우닥스 체르비나라 (194?~194?) 아베차노 (1945~1946) 아베차노 (1946~1947) 노체리나 (1951) 라 치바소 (1955~1956) US 프로 베르첼리 칼초 (1959) 트리네세 (1961) |
가족 | 조카 실비오 피올라 |
1. 개요[편집]
2. 특징[편집]
3. 생애[편집]
3.1. 클럽[편집]
주세페 카반나는 20년대까지 잘 나가던 팀이자 고향팀인 프로 베르첼리에서 데뷔하였다. 1923-24 시즌에 프로 베르첼리의 유소년 팀인 베르첼리 에란티에서 그의 기록이 시작된다. 당시 프로 베르첼리에서 가장 잘 나가는 선수였던 그는 1929년 나폴리로 이적한다.
그가 이적한 첫 해에 나폴리의 창설자이자 초대 회장인 조르조 아스카렐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였고, 나폴리 선수들은 아스카렐리의 영전에 우승 트로피를 바치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성적이 더 오른 1932-33 시즌에서야 3위권 언저리의 성적을 거둠으로서 우승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2]
나폴리에서 나온 카반나는 베네벤토, 고향팀 프로 베르첼리를 거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고, 1945-46 시즌 세리에 C에서 4게임을 뛴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가 이적한 첫 해에 나폴리의 창설자이자 초대 회장인 조르조 아스카렐리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였고, 나폴리 선수들은 아스카렐리의 영전에 우승 트로피를 바치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하지만 성적이 더 오른 1932-33 시즌에서야 3위권 언저리의 성적을 거둠으로서 우승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2]
나폴리에서 나온 카반나는 베네벤토, 고향팀 프로 베르첼리를 거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였고, 1945-46 시즌 세리에 C에서 4게임을 뛴 것이 마지막이었다.
3.2. 국가대표팀[편집]
3.3. 감독[편집]
나폴리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아벨리노에서 감독 생활을 시작하였다. 베네벤토에서는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하기도 했고, 주로 세리에 C나 D팀에서 감독생활을 하였다.
카반나가 감독으로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절은 아벤치노 감독 시절이었다.
카반나가 감독으로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았던 시절은 아벤치노 감독 시절이었다.
4. 플레이 스타일 & 평가[편집]
나폴리 팬들에게는 재규어란 별명을 받을 정도로 사랑받던 선수였다.
5. 수상[편집]
5.1. 국가대표[편집]
- FIFA 월드컵 우승 1회: 1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