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성노호 TEAM KOREA | ||
감독 | ||
주장 | C 심재학 | |
킷 스폰서 | ||
팀 스폰서 | - | |
참가대회 | ||
최종성적 |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6전 6승 | |
선수성적 | [ 펼치기 · 접기 ]타자부분 【최다 타수】 【최다 안타】 【최다 홈런】 【최다 타점】 【최다 득점】 【최다 도루】 투수부분 【최다 출전】 【최다 이닝】 【최다 승리】 【최다 홀드】 - 【최다 세이브】 - 【최다 탈삼진】 | |
1. 개요[편집]
2. 코칭 스태프 명단[편집]
방콕 아시안 게임에 이어서 이 대표팀에도 프로-아마 혼합 대표팀을 꾸리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감독은 1998년 대표팀을 성공적으로 이끈 주성노 감독이 재임명되었다.
그리고 대표팀 최종 엔트리 발표후 4일후에 코치진 선임도 완료 되었다.
3. 최종 엔트리[편집]
직책 | 이름 | 등번호 | 소속 | 투타 | 비고 |
투수 | 정민태 JUNG Mintae | 00 | |||
투수 | 정민철 JUNG Minchul | 00 | |||
투수 | 구대성 KOO Daesung | 00 | |||
투수 | 문동환 MOON Donghwan | 00 | |||
투수 | 주형광 JOO Hyungkwang | 00 | |||
투수 | 진필중 JIN Pil-jung | 00 | |||
투수 | 임창용 LIM Changyong | 00 | |||
투수 | 경헌호 KYEONG Heonho | 00 | |||
투수 | 조용준 JO Youngjun | 00 |
직책 | 이름 | 등번호 | 소속 | 투타 | 비고 |
포수 | 김동수 KIM Dongsoo | 00 | 우투우타 | ||
포수 | 홍성흔 HONG Seong-Heun | 00 | 우투우타 | ||
포수 | 김상훈 KIM Sanghun | 00 | 우투우타 | ||
내야수 | 이승엽 LEE Seungyuop | 36 | 좌투좌타 | ||
내야수 | 김한수 KIM Hansoo | 00 | |||
내야수 | 박정태 PARK Jungtae | 00 | |||
내야수 | 유지현 RYU Jihyun | 00 | |||
내야수 | 김민호 KIM Minho | 00 | |||
내야수 | 김동주 KIM Dongjoo | 00 | |||
내야수 | 신명철 SHIN Myeong-cheol | 00 | |||
내야수 | 이병규 LEE Byungkyu | 00 | |||
내야수 | 정수근 CHUNG Soo-geun | 00 | 좌투좌타 | ||
내야수 | 박재홍 PARK Jaehong | 00 | 좌투좌타 | ||
내야수 | 양준혁 YANG Joonhyuk | 00 | 좌투좌타 | ||
내야수 | 박한이 PARK Hanyi | 00 | 좌투좌타 |
4. 대회 준비[편집]
5. 제20회 아시아야구선수권[편집]
제 20회 아시아선수권야구대회 예선 조 편성 | |||||
A조 | B조 | ||||
한국 대표팀은 예선 2승, 결선 3승 무패의 괴력을 보여주었으며, 최종적으로는 예/결선 5승 무패의 한국과 4승 1패의 일본이 시드니 올림픽 출전권을 얻게 되었다.
5.1. 예선 1차전 Vs 중국[편집]
2000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예선 Games of the XXVII Olympiad ━━━━━━━━━━━━━━━━━━━━━━━━━━━━ 예선 1차전, 9.11, 14:00, 명 잠실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R | H | E | B |
0 | 0 | 0 | 0 | 0 | 0 | 0 | 0 | |||||
1 | 0 | 6 | 0 | 0 | 3 | X | 10 | |||||
약체 중국을 상대로 콜드승리를 거두었다. 조용준은 1피안타 5K, 정민철과 진필중은 각각 4K, 1K를 기록했다.
5.2. 예선 2차전 Vs 태국[편집]
2000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예선 Games of the XXVII Olympiad ━━━━━━━━━━━━━━━━━━━━━━━━━━━━ 예선 3차전, 9.13, 14:00, 명 잠실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R | H | E | B |
2 | 3 | 0 | 1 | 4 | 1 | 0 | 11 | |||||
와치라 | 0 | 0 | 0 | 0 | 0 | 0 | 0 | 0 | ||||
5.3. 본선 1차전 Vs 중국[편집]
5.4. 본선 2차전 Vs 대만[편집]
양팀 선발투수는 한국은 정민태, 대만은 곽원치(궈위안즈).[5]
5회까지는 2대2의 팽팽한 접전. 한국은 6회 이승엽의 홈런과 김동수의 적시타가 나오면서 4대2로 앞서나간다. 그렇지만 8회 구원투수 임창용이 대만 4번타자 천진펑에게 2타점 적시타를 맞으면서 동점 허용. 결국 연장 11회 박재홍의 끝내기안타로 경기를 마무리한다.[6]. 한국은 이 경기를 이기면서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였다.
다만, 이 경기는 연장 11회 접전으로 갔기 때문에 하마터면 홈에서 예선탈락을 하는 망신을 당할 뻔 했다. 특히 당시 해설이었던 허구연이 클로징멘트에서 이 부분에 대한 일침을 가하면서 훗날 삿포로 참사(야구)에 대한 암시를 주기도 한다.
5.5. 본선 3차전 Vs 일본[편집]
6. 여담[편집]
[1] 방콕 아시안 게임부터 프로선수가 참가함에 따라, 프로 소속 선수가 1명이라도 참가하는 대회의 경우 무조건 나무방망이를 사용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2] 취소선이 그어진 것은 비리 문제로 인하대 감독 자리에서 불명예 퇴진했기 때문이다. 2008년 히어로즈의 프런트로 들어왔으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3]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코치.[4] 이승엽,"대표팀 뽑혀 기쁘다".[5] 1988년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 MVP 출신으로 당시기준 나이 만43세. 1999년에는 일본에서 귀국한 상태로, 대만프로야구에서 뛰고 있었다.[6] 이때 끝내기안타를 맞았던 허명걸(쉬밍지에)은 이듬해인 2000년에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즈에 입단해서 무려 2011년까지 세이부 한팀에서만 선수생활을 한다(2012~13년 오릭스 버팔로즈를 거쳐 대만 복귀). 허명걸은 세이부에서의 초기인 2004년까지는 나름 준수한 활약을 했고, 2002년 팀의 퍼시픽리그 우승에도 힘을 보탠다.[7] 당시 긴테쓰 버팔로스 소속으로 1997년 일본프로야구 퍼시픽리그 다승왕.[8] 사실 이전부터 일본에서 구대성에 대한 관심은 늘 있어왔지만, 이 대회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일본 스카우트들의 집중 타켓이 된다. 반면 이미 해외진출 자격요건(7년)을 획득해 대회직전까지 스카우트들의 관심 1순위였던 정민철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모습과 떨어진 직구구속으로 실망감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