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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조선일보 방응모의 가족 관계.
특이하게도 신문사로서의 조선일보는 조중동중에 제일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강하지만, 반대로 혼맥은 조중동 가문중 제일 단출하다.[1] 또한 중앙일보 가문이나 동아일보 가문과는 달리 조선일보 가문은 조선일보 말고 다른 기업을 경영한적이 없으며[2], 동아일보 가문처럼 준대기업 이상의 큰 기업을 소유, 경영하거나, 중앙일보 가문처럼 억만장자를 배출한 적이 없다.
실제로 조중동이라는 말은 90년대 중후반쯤에 만들어진 말로, 인촌 김성수의 집안에서 이어진 동아일보 가문, 범 삼성가의 사돈이자 측근이었던 홍진기 집안의 중앙일보 가문와 달리 조선일보는 80년대 이전까진 한국일보에도 밀렸지만, 신군부의 비호를 통해 급격히 위세가 커졌기 때문이다.
밤의 대통령 집안답게 한때는 정권과 신경전을 할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신문을 잘 안 보고, 신문구독자들도 꽤 이탈했으며, 여론을 이끄는 주체가 신문사에서 방송사[3]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등 소위 빅테크로 넘어가면서 위상이 예전만은 못하다는 평이 있다. 이는 다른 신문사들도 마찬가지인데, 신문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 때문이다. 그래도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사에 비하면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자산총액면에서 제일 높은 편이다.
방씨조선이라는 멸칭도 있다[4]. 같은 메이저 언론가문인 중앙일보, 동아일보 일가와는 달리 조선일보 가문은 장자연 사건, 조선일보 손녀 갑질 논란, 방용훈 부인 자살 사건 등 온갖 사건들이 쏟아지는지라 많은 비판을 받는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는 방씨 집안의 저택이 있는데, 수천평에 달하는 대저택으로 오랫동안 서울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으로 꼽혔었다.
특이하게도 신문사로서의 조선일보는 조중동중에 제일 규모가 크고 영향력이 강하지만, 반대로 혼맥은 조중동 가문중 제일 단출하다.[1] 또한 중앙일보 가문이나 동아일보 가문과는 달리 조선일보 가문은 조선일보 말고 다른 기업을 경영한적이 없으며[2], 동아일보 가문처럼 준대기업 이상의 큰 기업을 소유, 경영하거나, 중앙일보 가문처럼 억만장자를 배출한 적이 없다.
실제로 조중동이라는 말은 90년대 중후반쯤에 만들어진 말로, 인촌 김성수의 집안에서 이어진 동아일보 가문, 범 삼성가의 사돈이자 측근이었던 홍진기 집안의 중앙일보 가문와 달리 조선일보는 80년대 이전까진 한국일보에도 밀렸지만, 신군부의 비호를 통해 급격히 위세가 커졌기 때문이다.
밤의 대통령 집안답게 한때는 정권과 신경전을 할 정도의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이 신문을 잘 안 보고, 신문구독자들도 꽤 이탈했으며, 여론을 이끄는 주체가 신문사에서 방송사[3]와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등 소위 빅테크로 넘어가면서 위상이 예전만은 못하다는 평이 있다. 이는 다른 신문사들도 마찬가지인데, 신문산업 자체가 사양산업이 때문이다. 그래도 조선일보는 다른 신문사에 비하면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자산총액면에서 제일 높은 편이다.
방씨조선이라는 멸칭도 있다[4]. 같은 메이저 언론가문인 중앙일보, 동아일보 일가와는 달리 조선일보 가문은 장자연 사건, 조선일보 손녀 갑질 논란, 방용훈 부인 자살 사건 등 온갖 사건들이 쏟아지는지라 많은 비판을 받는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는 방씨 집안의 저택이 있는데, 수천평에 달하는 대저택으로 오랫동안 서울에서 가장 비싼 단독주택으로 꼽혔었다.
2. 가족 관계[편집]
◇방계준(方啓畯)
△1남 방응곤(方應坤)
◎2남 방재윤(方在胤) (1901 ~ 1940)[5]
◎ 양자 방재윤 (1901 ~ 1940)[7] / 妻 이성춘(李成春, 수안 이씨) (1906 ~ 1973)
◆1남 방일영(方一榮) (1923 ~ 2003) 조선일보 회장 / 妻 박현숙(朴賢淑, 밀양 박씨) (1926 ~ 1986)
ㅁ1남 방인성(方寅誠) (2001 ~ )
ㅁ2남 방현성(方玹誠) (2003 ~ )
ㅁ3남 방진성(方辰誠) (2010 ~ )
ㅁ2남 방현성(方玹誠) (2003 ~ )
ㅁ3남 방진성(方辰誠) (2010 ~ )
ㅇ1녀 방경원(方卿瑗) (1976 ~ ) / 夫 한상원(韓相遠, 청주 한씨) (1971 ~ ) 한앤컴퍼니 대표이사 사장
ㅁ1남 한용호 (2003 ~ )
ㅁ2남 한성호 (2006 ~ )
ㅁ2남 한성호 (2006 ~ )
ㅁ1녀 방선윤(方宣允, 2009 ~ )[13]
ㅁ1남 방주성(方胄誠, 2010 ~ )
ㅁ1남 방주성(方胄誠, 2010 ~ )
▽3남 방준경(方俊卿) (1959 ~ )[17]
ㅇ1녀 방윤선(方允宣) (1988 ~ )
ㅇ1남 방원오(方源梧) (1990 ~ )
ㅇ1남 방원오(方源梧) (1990 ~ )
▽4남 방문석(方文奭) (1961 ~ ) 서울대 의대 교수[18]
ㅇ1남 방영오(方寧梧) (1992 ~ )
ㅇ2남 방수오(方壽梧) (1996 ~ )
ㅇ2남 방수오(方壽梧) (1996 ~ )
▽5남 방문기(方文基) (1964 ~ )
ㅇ1녀 방윤서(方胤瑞) (1998 ~ )
ㅇ2녀 방윤제(方胤濟) (1999 ~ )
ㅇ2녀 방윤제(方胤濟) (1999 ~ )
▽3녀 방혜신(方惠信)(1995 ~ ) / 夫 정연욱(鄭然旭, 연일 정씨) (1962 ~ ) 경남에너지 부회장[23]
◎1남 방재선(方在璇) (1944 ~ ) 방응모기념사업회 이사장[26] / 妻 김하자(金夏子, 충주 김씨), 김명희(金明禧, 파평 김씨)
◆1남 방진영(方振榮) (1968 ~ ) / 妻 김성희(金成姬, 김해 김씨)
◆2남 방인영(方寅榮) (1971 ~ )
◆1녀 방민영(方旻榮) (1992 ~ )[27]
◆2녀 방원영(方元榮) (1994 ~ )
◆3녀 방하영(方何榮) (1995 ~ )
◆2남 방인영(方寅榮) (1971 ~ )
◆1녀 방민영(方旻榮) (1992 ~ )[27]
◆2녀 방원영(方元榮) (1994 ~ )
◆3녀 방하영(方何榮) (1995 ~ )
◎2남 방재효(方在孝) (1946 ~ ) / 妻 조민효(趙民孝, 풍양 조씨)
◆1녀 방소영(方昭榮) (1977 ~ )
◆2녀 방혜영(方惠榮) (1986 ~ )
◆2녀 방혜영(方惠榮) (1986 ~ )
◎3남 방재휴(方在畦) (1948 ~ ) / 妻 김경희(金慶姬, 광산 김씨)
◆1남 방윤영(方胤榮) (1981 ~ )
◆2남 방신영(方信榮) (1983 ~ )
◆2남 방신영(方信榮) (1983 ~ )
3. 조선일보 가문 기업 임원단[편집]
[1] 참고로 중앙, 동아일보 가문은 둘다 삼성가와 사돈이다.[2] 참고로 동아일보 가문은 동아일보 외에도 삼양그룹, 경방을 경영하고 있으며, 중앙일보 가문은 중앙일보(중앙그룹) 외에 BGF그룹을 경영하고 있다.[3] 그래서 조선일보를 비롯한 조중동이 종편을 만들어 방송사업에 뛰어들었다.[4] 온양 방씨이다.[5] 삼촌인 방응모의 양자로 입적되었다.[6] 다만 조선일보를 창업한 사람은 조진태다. 중간에 방응모가 인수한것.[7] 삼촌인 방응모의 양자로 입적되었다.[8] 미국에서 수녀로 지낸다는 이야기가 있다.[9] 윤치호의 손자 윤영구 메트로항공 회장의 장녀[10]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녀. 자세한 내용은 범 LG가 참고.[11] 형제자매로 남동생이 한명 있는데, 남동생은 중앙일보의 사주인 홍석현의 장녀랑 결혼했다.[12] 이인수 前 수원대학교 총장의 장녀[13] 조선일보 손녀 갑질 논란의 당사자이다.[14] 서울에 있는 4성급 호텔이다. 조선일보에 속해있다.[15] 이부용 대림비앤코 고문의 3남[16]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의 차남[17] 의사로 알려져있다. 이하는 방일영과 첫째 혼외부인의 자녀들이다. 이쪽 3형제는 가족들에게 그나마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18] 국립재활원장과 대한재활의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19년 서울대병원장 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으나, 이복형의 논란으로 불출마하게 되었다고. 방문석 교수, 서울대병원장 선거 '불출마'.[19] 이하는 방일영과 둘째 혼외부인의 자녀들이다. 이쪽은 아예 방일영 사망 당시 발인식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사후 서울가정법원에서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해 호적에 이름을 올렸다.[20] 이영조 전 서울대 교수의 딸[21] 서성환 태평양그룹 회장의 아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형[22] 김도창 법제처장의 장남[23] 정해영 국회부의장의 손자, 정재문 국회의원의 아들[24]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 딸. 동생 최민석은 김부겸의 사위다.[25] 김형남 일신방직 창업주의 아들[26] 환갑이 다되어 본 늦둥이. 태어날 당시 양자였던 방재윤은 사망하였으나, 그의 아들들이 조선일보를 이었다. 조선일보의 다른 사람들이 방응모의 친일반민족행위를 부정하는 것과 달리 부친의 친일을 세상에 밝히고 다녀서 가문 사람들과 사이가 안좋았고, 상속 관련 소송전을 벌였으나 결국 조선일보 상속을 포기했다[27] 이하 후처 소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