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중국 국기.svg 중화인민공화국 허난성의 성도
[ruby(郑州市, ruby=Zhengzhou)] 정저우시 | ||
면적
| 7,507km²
| |
인구
| 10,120,000 명
| |
인구밀도
| 1,348명/k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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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 전체
| 1,417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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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GDP
| 14,000 $
| |
1. 개요
2. 역사
신석기 시대부터 주거 흔적이 확인될 정도로 유서 깊은 도시이다. 이미 상나라(은나라) 시대부터 도시의 존재가 확인되며, 견융족의 침공으로 주나라가 수도를 호경에서 낙양으로 옮길 때 근처에 있던 정나라[3]가 함께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때 옮겨 온 자리가 지금의 정저우 시의 현급시인 신정시(新鄭市). 이후 삼가분진으로 진나라를 갈라먹은 한나라가 정나라를 멸망시키고 이곳을 수도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정저우 시는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에 한 번씩 소국의 수도 역할을 했었지만, 주위의 다른 도시들과는 달리 통일 왕조의 수도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중국 7대 고도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유서 깊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7대 고도에는 살짝 못 미치는 느낌.
정나라가 하필 이 자리로 옮겨온 것은 그만큼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 카이펑에서 서쪽으로 40km, 뤄양 (낙양)에서 동쪽으로 100여km, 쉬창에서는 북쪽으로 60km 떨어진 황하 남쪽의 평야에 세워졌고, 시내에서 황허까지는 약 15km 떨어져 있다. 정리하자면 적당히 교통도 좋으면서 주위에 방어를 위한 자연 기물이 있는 낙양과는 달리 그냥 평야 한복판에 있어서 온 도로가 모여드는 듯한 느낌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중원이 허난 성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정저우 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원스러운 곳인 셈. 나름 정나라는 주나라가 약해지고 있는 마당에 주위로 뻗어나가기 좋은 곳을 고른 셈이었지만 그 위치 때문에 오히려 춘추시대에는 초나라와 진나라의 격전장이 되었고, 결국 한나라가 이곳을 차지하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사실 삼가분진이라고는 하지만 한나라의 덩치는 나라라고 하기엔 좀 모자랐는데, 정나라를 멸망시키고 정저우시를 차지하면서 어찌어찌 전국칠웅에 들어가는 나라 꼴은 갖추게 된 것. (그래봤자 최약체였지만.) 이후에도 교통의 요지라는 위치가 어디 가지는 않아서 삼국시대의 판도를 사실상 결정지은 전투인 관도대전 역시 바로 이 곳에서 벌어졌다.
90년대 이후 중점 육성 도시로 선정되어 중도(中都)라 불릴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활기찬 도시다. [4] 그만큼 중국 중부 지역에서 공업활동이 왕성한 중심도시라는 말도 된다.
정저우 주변 도시들은 모두 통일 왕조의 수도였으나, 현대는 정저우가 이들 옛 도읍을 제치고 독보적으로 자리잡았다. 이 도시의 서쪽에 있는 뤄양(한나라 등 여러 나라), 동쪽에 있는 카이펑(오대십국시대 및 북송, 금나라), 남쪽에 있는 쉬창(후한 말기), 북쪽에 있는 안양(중국)(은나라) 모두 수도였으나 근현대에는 옛날만 못하다. 정저우는 역사시대에는 도읍이 되지 못한 지방 도시였으나, 현대에 이르러 허난성의 성도가 되었다. 이렇게 역전된 이유는, 징광철도를 놓을 때 베이징과 우한을 잇는 선 위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뤄양이나 카이펑으로 굳이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당시 비교적 개발되지 않았던 정저우를 통하는 것이 공사비용이 더 쌌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고 그 후 세 도시의 운명이 결정되었다.
정나라가 하필 이 자리로 옮겨온 것은 그만큼 교통의 요지였기 때문. 카이펑에서 서쪽으로 40km, 뤄양 (낙양)에서 동쪽으로 100여km, 쉬창에서는 북쪽으로 60km 떨어진 황하 남쪽의 평야에 세워졌고, 시내에서 황허까지는 약 15km 떨어져 있다. 정리하자면 적당히 교통도 좋으면서 주위에 방어를 위한 자연 기물이 있는 낙양과는 달리 그냥 평야 한복판에 있어서 온 도로가 모여드는 듯한 느낌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중원이 허난 성을 가리킨다고 하는데 정저우 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원스러운 곳인 셈. 나름 정나라는 주나라가 약해지고 있는 마당에 주위로 뻗어나가기 좋은 곳을 고른 셈이었지만 그 위치 때문에 오히려 춘추시대에는 초나라와 진나라의 격전장이 되었고, 결국 한나라가 이곳을 차지하는 것으로 끝이 나게 된다. 사실 삼가분진이라고는 하지만 한나라의 덩치는 나라라고 하기엔 좀 모자랐는데, 정나라를 멸망시키고 정저우시를 차지하면서 어찌어찌 전국칠웅에 들어가는 나라 꼴은 갖추게 된 것. (그래봤자 최약체였지만.) 이후에도 교통의 요지라는 위치가 어디 가지는 않아서 삼국시대의 판도를 사실상 결정지은 전투인 관도대전 역시 바로 이 곳에서 벌어졌다.
90년대 이후 중점 육성 도시로 선정되어 중도(中都)라 불릴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활기찬 도시다. [4] 그만큼 중국 중부 지역에서 공업활동이 왕성한 중심도시라는 말도 된다.
정저우 주변 도시들은 모두 통일 왕조의 수도였으나, 현대는 정저우가 이들 옛 도읍을 제치고 독보적으로 자리잡았다. 이 도시의 서쪽에 있는 뤄양(한나라 등 여러 나라), 동쪽에 있는 카이펑(오대십국시대 및 북송, 금나라), 남쪽에 있는 쉬창(후한 말기), 북쪽에 있는 안양(중국)(은나라) 모두 수도였으나 근현대에는 옛날만 못하다. 정저우는 역사시대에는 도읍이 되지 못한 지방 도시였으나, 현대에 이르러 허난성의 성도가 되었다. 이렇게 역전된 이유는, 징광철도를 놓을 때 베이징과 우한을 잇는 선 위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뤄양이나 카이펑으로 굳이 돌아갈 수도 있었으나, 당시 비교적 개발되지 않았던 정저우를 통하는 것이 공사비용이 더 쌌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게 되었고 그 후 세 도시의 운명이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