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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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왕(莊王)
(姬)
타(佗)
아버지
생몰 기간
기원전 ???년 ~ 기원전 682년
재위 기간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82년

1. 개요2. 생애
2.1. 왕자 극의 난2.2. 제양공과 인척 관계를 맺다.
3. 군사 활동과 최후

1. 개요[편집]

주나라의 제15대 . 환왕장남. 희왕의 아버지. 왕자 극의 형. 왕자 극의 난을 진압해 왕권을 안정시켰다.

2. 생애[편집]

2.1. 왕자 극의 난[편집]

환왕은 왕자 극(王子 克)을 총애하여 그를 왕으로 올리려 했다. 그러나 장남이 아들이 없거나 하는 등의 특별한 이유가 아니면 전례에 없는 일인지라, 주공 흑견(周公 黑肩)을 희극의 후견인으로 삼았다. 그 와중에 희타가 태자의 신분으로 장왕이 되었다.[1]

장왕 3년(기원전 694년), 주공 흑견은 힘을 기른 뒤 장왕을 죽이고, 희극을 왕위에 세우려 했다. 그러나 신백(辛伯)이 그것을 밀고해버리는 바람에 장왕은 크게 분노해 주공 흑견을 제거하고, 희극은 연나라로 달아났다. 이 사건을 왕자 극의 난이라고 한다.

2.2. 제양공과 인척 관계를 맺다.[편집]

장왕 4년(기원전 693년) 여름, 장왕은 그의 여동생을 제양공의 아내로 보냈다. 그 음란한 놈의... 그리고 노환공에게 중매를 서게 했다. 같은 해 겨울 장왕은 대신 영숙을 보내 노 환공에게 상을 내렸다. 그런데, 제양공이 노환공을 격살한 것을 생각하면 참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장왕 6년(기원전 691년) 5월, 장왕은 환왕의 시신을 안장하였다. 아마 흘러간 세월을 보건대 장왕은 환왕을 묻었기는 했겠지만, 그 동안 일이 적지 않았는지 아니면 왕자 극의 난 때문에 미워서 제대로 안장 안했는지는 모른다. 자세한 기록이 없으니 그저 추측의 영역일 뿐.

3. 군사 활동과 최후[편집]

장왕 8년(기원전 689년) 겨울, 노나라제나라, 송나라, 진(陳)나라, 채나라와 함께 위나라를 쳤다.

장왕 9년(기원전 688년) 정월, 장왕은 속관 자돌을 보내 위나라를 구하게 했다.

장왕 15년(기원전 682년), 장왕이 죽고 그 아들인 희호제가 뒤를 이으니 그가 바로 희왕이다.

[1] 환왕은 그를 태자에서 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