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국명
| 존속
| 건국군주
| 멸망군주
|
BC 403 ~ BC 225
| 문후
<삼진 분립> | ||
위(춘추시대)
| ? ~ BC 661
| ?
| ?
|
위(魏)
(조위) | 220 ~ 265
| ||
350 ~ 352
| |||
적위(翟魏)
| 388 ~ 391
| 적료
| |
386 ~ 534
| |||
이위(李魏)
| 617 ~ 618
| ||
왕위(王魏)
| 909 ~ 929
| 왕처직
| 왕도
|
중국에 존재했던 여러 나라들.
2. 衛
- 위(춘추전국시대) 문서 참조.
3. 魏
3.1. 중국 춘추시대의 국가 위나라
3.2. 중국 고대 전국시대의 국가 위나라
- 위(전국시대) 문서 참조.
3.3. 삼국시대 조조의 아들 조비가 세운 조위
3.4. 한족 염민이 세운 염위
350년 후조(後趙)의 인물인 염민(冉閔)이 후조의 황제 석지(石祗)를 살해하고 업(鄴)에서 건국하였다. 국호는 위이며 구분하기 위해 염민의 성을 붙여 염위(冉魏)로 불린다. 그러나 건국 후 2년 만에 전연(前燕)의 공격으로 염민이 살해되고, 나라가 멸망한 후 태자 염지(冉智)는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여 완전히 멸망하였다. 역사가 짧아 16국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수
| 묘호
| 시호
| 성명
| 연호
| 재위 기간
| 능호
|
-
| -
| 원황제(元皇帝)[4]
| 염륭(冉隆)
| -
| -
| -
|
-
| 열조(烈祖)
| 고황제(高皇帝)[7]
| -
| -
| -
| |
1대
| -
| 염민(冉閔)
| 영흥(永興) 350년 ~ 352년
| 350년 ~ 352년
| -
| |
-
| -
| -
<해빈후(海賓侯)> | 염지(冉智)
| 영흥(永興, 352)
| 352
| -
|
3.5. 정령(철륵)족 적료가 세운 적위
통칭 적위(翟魏)라 불리며 불과 4년(...)만에 멸망했다. 역사가 짧아 16국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수
| 묘호
| 시호
| 휘
| 연호
| 재위기간
|
1
| -
| -
<하남공(河南公)> | 적료(翟遼)
| 건광(建光, 388 ~ 391)
| 388 ~ 391
|
3.6. 탁발선비가 세운 북위
3.7. 수말당초 이밀이 세운 이위
수말당초 이밀이 세운 단명국가. 통칭 이위(李魏)
3.8. 오대십국 왕처직이 세운 왕위
909년 ~ 929년
오대십국시대의 소국 중에 하나로 북평(北平), 혹은 왕위(王魏)라고도 불리며, 십국에는 들지 않는다. 유력 절도사 의무 절도사 세력으로, 의무 절도사 왕처직이 909년 후량의 주전충으로부터 북평왕(北平王)에 책봉되었다. 이후 양자인 왕욱이 921년 왕위를 찬탈하고 위왕(魏王)이라 선포하였다. 929년 후량의 명종이 왕안구를 보내 북평을 쳐 근거지인 정주성을 깨뜨리자, 왕욱은 가솔과 함께 스스로 불을 질러 자살하여 의무 절도사 세력은 소멸하였다.
대수
| 묘호
| 시호
| 휘
| 재위기간
|
1
| -
| -
<북평왕(北平王)> | 왕처직(王處直)
| 909 ~ 921
|
2
| -
| -
<위왕(魏王)> | 왕도(王郁)
| 921 ~ 929
|
[1] 영어 등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조 부호를 제외한 Wei를 쓴다. 현대 중국어에서 성조까지 같은 위(衛)는 Wey로 써서 위(魏)와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세 설명은 衛 단락의 주석을 참고할 것.[2] 영어 등에서는 일반적으로 성조 부호를 제외한 Wei를 쓴다. 현대 중국어에서 성조까지 같은 위(衛)는 Wey로 써서 위(魏)와 구분하는 경우가 많은데 상세 설명은 衛 단락의 주석을 참고할 것.[3] 염민의 조부. 염민이 추존.[4] 염민의 조부. 염민이 추존.[5] 염민의 부친. 염민이 추존.[6] 다른 이름은 염첨(冉瞻).[7] 염민의 부친. 염민이 추존.[8] 다른 이름은 염첨(冉瞻).[9] 모용준이 추존.[10] 염민의 후손에 의해서 추존.[11] 모용준이 추존.[12] 염민의 후손에 의해서 추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