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의 적모 完陽府大夫人 | 완양부대부인 | |
호칭 | 완양부대부인(完陽府大夫人) |
출생 | |
사망 | |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전계대원군묘 | |
전주(全州) | |
부모 | 부친 최수창(崔秀昌), 모친 광주 이씨(廣州 李氏) |
부군 | 전계대원군(全溪大院君) |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3. 사후[편집]
4. 가족과 후손[편집]
슬하에 아들 이원경 하나만 두었다. 이원경은 전계대원군의 세 아들 중 장남이다. 1840년(헌종 6년)과 1841년(헌종 7년)에 연달아 부모를 잃었음에도[2] 평정심을 잃지 않고 두 이복동생들을 돌보며 그럭저럭 살다가 1844년(헌종 10년)에 민진용의 옥사에 연루되어 사형당했다.
1849년(철종 즉위년)에 철종이 왕이 된 뒤, 이원경은 복권되었고 회평군(懷平君)으로 추증되었다. 그러나 전계대원군 가문의 제사는 회평군이 아니라 의붓아들 영평군 이욱[3]이 받들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영평군은 완양부대부인의 양자로 입적했다. 그래서 완양부대부인의 제사 역시 전계대원군과 마찬가지로 영평군과 그의 후손들이 모셨다.
1849년(철종 즉위년)에 철종이 왕이 된 뒤, 이원경은 복권되었고 회평군(懷平君)으로 추증되었다. 그러나 전계대원군 가문의 제사는 회평군이 아니라 의붓아들 영평군 이욱[3]이 받들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영평군은 완양부대부인의 양자로 입적했다. 그래서 완양부대부인의 제사 역시 전계대원군과 마찬가지로 영평군과 그의 후손들이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