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폴란드 해군 군함 |
1. 개요[편집]
2. 함생[편집]
2.1. 2차대전 이전-탈린 입항[편집]
2.2. 필사의 탈출, 활약[편집]
9월 8일부터 중병을 앓던 함장 헨리크 크워츠코프스키(Henryk Kłoczkowski) 소령은 다음날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았으며, 오제우의 선원들은 독일의 압력을 받은 에스토니아 측에 억류되었다. 하지만 17일과 18일 사이의 안개 낀 야음을 틈타 1등 항해사였던 얀 그루진스키(Jan Grudziński) 중위가 함장으로 선출되었고, 그의 지휘 하에 선원들이 2명의 에스토니아 경비대원을 인질로 붙잡고 에스토니아군의 포화가 쏟아지는 와중에 오제우를 탈취, 필사의 탈출을 감행해 바닷속으로 재빨리 사라져 버렸으며[2] 핀란드 만과 스웨덴-덴마크 연안을 거쳐 영국으로 성공적으로 탈출했다.
이후 오제우가 전쟁중에 공격을 시도한 건 딱 세 번이다. 첫 번째는 소련의 발트 국가들 침공 당시 소련군 소속 유조선이였던 메타리스트 호를 격침시켰던 것이었고,[3] 둘째는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직전인 1940년 4월 8일 독일의 병력 수송선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를 어뢰로 공격하여 격침, 수백여 명의 독일 병사들을 물귀신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조국의 복수를 한 것이었다. 오제우의 마지막 공격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는데, 독일군의 기뢰부설함이었던 V 705를 공격하였으나 근처에 진을 치고 있던 다른 독일군 함선들 때문에 오제우는 어뢰가 명중한 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급히 잠수해야 했었고, 결국 공격에 실패하고 만다.
이후 오제우가 전쟁중에 공격을 시도한 건 딱 세 번이다. 첫 번째는 소련의 발트 국가들 침공 당시 소련군 소속 유조선이였던 메타리스트 호를 격침시켰던 것이었고,[3] 둘째는 독일의 노르웨이 침공 직전인 1940년 4월 8일 독일의 병력 수송선 리우 데 자네이루(Rio de Janeiro)를 어뢰로 공격하여 격침, 수백여 명의 독일 병사들을 물귀신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조국의 복수를 한 것이었다. 오제우의 마지막 공격은 그로부터 이틀 후였는데, 독일군의 기뢰부설함이었던 V 705를 공격하였으나 근처에 진을 치고 있던 다른 독일군 함선들 때문에 오제우는 어뢰가 명중한 것을 확인할 새도 없이 급히 잠수해야 했었고, 결국 공격에 실패하고 만다.
2.3. 사라지다[편집]
그리고 오제우는 통산 일곱번째 출격이었던 5월 23일, 항구를 나선 뒤 1940년 6월 8일,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다.[4] 그중에는 위에서 설명한 그루진스키 중위도 포함되어 있었고, 공산 정권 붕괴 이후 폴란드 정부에서도 함선의 잔해, 아니 파편이나마 찾으려고 실종 지점 근방에서 애타게 찾았으나 역시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현재도 꾸준히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는 중. 이중에서 오제우가 영국군/독일군의 기뢰밭에 들어갔다가 기뢰에 접촉하여 격침당했다는 것과 영국군 항공기에게 유보트로 오인받고 공격당해서 격침당했다는 설이 제일 유력하게 평가되고 있다.
[1] 이 와중에 오제우의 헬 항구에 정박해 있던 그리핀급 기뢰부설함은 독일 공군의 Ju87에 의해 격침당하고 말았다.[2] 인질로 잡혔던 에스토니아 경비대원 2명은 중립국인 스웨덴 해안에서 옷가지와 음식물, 미국 달러를 받고 풀려났다.[3] 이후 이 사건을 구실로 소련은 폴란드를 맹비난했다. 하지만 소련은 그런 말 자격이 없던 것이 이미 저 시점에서 소련은 폴란드의 동부 지역을 침공해서 먹어치운 후였다...[4] 정확히 말하자면 오제우의 실종 자체는 6월 1일에서 6월 2일 사이에 발생했다. 그 뒤로 오제우의 교신이 완전히 끊겼는데, 이를 불안하게 여긴 상부가 6월 5일에 오제우에게 귀환 명령을 내렸으나 역시 아무런 답신이 없었고, 결국 6월 8일 오제우의 실종이 공식적으로 확인된다.